역사속 오늘

서정시인 마리아 릴케 사망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로 시작하는 ‘가을날’의 시인 마리아 릴케가 1926년 12월 29일, 51세로 숨을 거뒀다. 그해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이집트 여자친구를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걸린 패혈증이 백혈병으로 발전해 생을 마친 것이다. 그때문인지 자신이 직접 쓴 묘비에는 ‘장미, 오 순수한 모순이여/ 수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 싶은’이라고 씌어있었다.

1875년 구 오스트리아령에서 태어난 릴케는 독일의 서정시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던 20세기 최고의 서정시인이었다. 어려서 육군사관학교를 다녔으나 취향이 맞지 않아 중도에 그만두고 19세에 첫 시집을 내며 시인의 길로 나섰다. 3년 후 14살 연상의 루 살로메를 만나면서 그의 삶과 시에도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빼어난 미모와 지성을 갖추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엽까지 유럽 지성계를 뜨겁게 달궜던 그녀는 유럽의 제1세대 ‘자유여성’이었다. 작가이자 정신분석가로 활동했던 루는 자신의 소설 만으로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니체와 프로이트 등 당대 지성들과의 남성 편력으로 유명했던 여인이었다.

루는 결혼한 몸이었지만 릴케와의 모성적 연애를 통해 이 젊은 시인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그녀와 함께 떠난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은 릴케에게 강한 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로댕에 관한 책을 쓰기위해 1902년부터 12년 동안 머물렀던 파리 생활을 통해서도 릴케는 로댕의 창조력에서 영향을 받아 많은 시를 쏟아냈다. 이후 로마·스페인·이집트 등 거의 유럽전역을 떠돌다 말년을 스위스에서 보내던 중 이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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