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장례용 황금 가면
1922년 12월 17일, 3245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있던 이집트 제18왕조(기원전 1570~기원전 1293년)의 12대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이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채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무덤에서는 수 천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3중으로 만들어진 투탕카멘의 관은 조심스럽게 발굴을 시작해 3년이 지난 1925년에야 끝냈다. 관에는 왕의 미라가 누워있었고, 머리에는 황금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황금가면의 얼굴은 순금, 눈은 아라고나이트석과 흑요석, 눈썹과 속눈썹은 청색 유리로 만들어졌다. 무게는 약 10㎏이었고, 높이 약 54㎝, 너비 약 40㎝였다.
무덤에서 또 하나 주목을 받은 것은 투탕카멘 미라와 함께 매장된 단검이었다.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녹이 슬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조사 결과, 철이 아닌 운석을 녹여 만들어졌다. 무덤에서 고고학자들을 감동시킨 것은 초상의 이마 위에 놓여진 한 묶음의 화환이었다. 조사 결과, 청상과부가 된 왕비가 남편에게 바치는 마지막 작별의 선물이었다. 무덤에서는 지팡이도 약 130개 발견되었는데 전문가들은 이로 미루어 투탕카멘이 생전에 관절이 좋지 않았고 거동이 불편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투탕카멘은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8세에 즉위했으나 그 역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8세에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죽음이 이집트 왕실의 근친혼에서 비롯된 유전병으로 추측한다. 투탕카멘의 부인은 이복남매였는데, 이 때문인지 그의 두 딸도 사산되거거나 몸이 약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딸의 시신도 투탕카멘과 함께 무덤에 묻혔다가 발굴되었다.
요절한 투탕카멘에게 숨을 불어넣고 다시 명성을 누리도록 도와준 이는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1874~1939)였다.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고고학 기초 지식을 배운 카터는 17세인 1891년 이집트로 건너가 처음에는 이집트에서 벽화 등을 옮겨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1902년 파라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왕가의 계곡’은 이집트 나일강 중류 룩소르의 서쪽 교외에 있는 좁고 긴 골짜기로 기원전 2000년부터 1000년 사이에 이집트를 다스렸던 파라오(최고통치자)들의 무덤이 들어차 이런 이름으로 불렸다. 투캉카멘의 무덤은 다른 파라오의 무덤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았다. 덕분에 오히려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발굴의 기쁨도 잠시 뿐,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가 시작됐다. 재정후원자이자 함께 발굴에 참여했던 카나본경 (卿)이 발굴 이듬해 4월 모기에게 뺨을 물린 것이 원인이 돼 폐렴으로 갑자기 죽고, 발굴에 참여했던 20여 명이 2∼3년 안에 목숨을 잃었다. 세계 언론들은 “투탕카멘왕이 저주를 내린 때문”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석관에 “왕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있다는 소문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