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여성화가 나혜석의 행려병자 죽음

1949년 12월 10일, 불꽃같은 삶을 살다 비운의 운명을 맞아야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여성화가 나혜석이 현재의 서울 원효로의 시립자제원에서 행려병자로 쓸쓸히 숨졌다. 그의 죽음은 1949년 1월 3일 발행된 관보를 통해 행려 사망자로 처리되었다. 무덤도 알려지지 않고 죽은 날짜도 1948년 12월 10일 하오 8시 30분으로만 기록되었을 뿐 확인할 길 없는 황망한 죽음이었다.

뛰어난 화가이자 재기넘치는 문필가였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이중성을 고발한 페미니스트였던 그의 52년 생애를 한마디 수식어에 가두기는 불가하다. 50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대성공을 거둔 그의 첫 여성 개인전람회(1921.3)는 그의 삶이 한창 절정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는 ‘경희’ 등 단편소설을 여러편 발표할 만큼 글재주도 뛰어났다. 그의 글은 가부장제 남성들의 이중적 행태를 고발할 때 더욱 빛이 났다. 3·1운동에 참가해 5개월 간 옥살이도 하고, 남편 김우영을 따라 이주(1921.9)한 만주에선 여자 야학을 세워 교육 사업을 하고 독립운동가를 도우며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1927년 6월부터 1년 8개월 간의 구미여행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분기점이 됐다.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사랑, 이로 인한 남편과의 이혼(1930.11)으로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소외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1934년 남성과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이혼고백서’로 또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는 결국 세상 사람들의 야유를 등지고 수덕여관, 청운양로원, 시립자제원을 전전하다 이날 52세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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