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20세기 역사의 축소판이다.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20세기의 정치와 과학과 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벨상의 첫 걸음마는 지금처럼 화려하지도 명예롭지도 못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제1회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것은 20세기의 여명이 밝아오던 1901년 12월 10일이었다. 이 날은 3150만 스웨덴 크로네(920만 달러)라는, 당시로선 엄청난 거액을 종자돈으로 내놓은 알프레드 노벨의 5주기이기도 했다.
5개 부문 6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X선’ 발견으로 물리학상을 수상한 뢴트겐과 평화상을 공동수상한 ‘적십자의 아버지’ 뒤낭의 이름이 낯익다. 그러나 막상 시상식은 크고 작은 말썽으로 뒤숭숭했다. 국왕 오스카르 2세가 요즘말로 ‘외화낭비’를 아까워하며 시상식에 불참해 잔치집에 찬 물을 끼얹었고, 시상식장에도 하객이 없어 종업원, 요리사까지 드레스를 입혀 자리를 채워야 했다. 게다가 문학상에서는 노벨이 생전에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장 유력한 후보 에밀 졸라가 제외되고, 다른 프랑스 작가 쉴리 프뤼돔이 뽑혀 공정성 논란마저 일었다. 스웨덴 작가들은 또 “왜 톨스토이에게 상을 주지 않느냐”고 들고 일어섰다. 메달도 제작자가 납품 날짜를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임시메달을 수여하는 촌극이 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