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박정희 대통령, 28시간 걸려 서독 방문… 차관 요청하고 경부고속도로 구상

1964년 12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서독의 쾰른공항에 첫 발을 내디뎠다. 전세기가 없어 서독에서 보내준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타고 60여 명의 일반승객과 함께 28시간동안이나 걸려 홍콩·방콕(태국)·뉴델리(인도)·카라치(파키스탄)·카이로(이집트)·로마(이탈리아)·프랑크푸르트(독일) 등 7곳이나 경유하는 먼 여정이었다. 말이 국빈방문이었지 숙소는 10평에 불과했고, 연도에 걸린 태극기도 스무개 남짓이었다.

박 대통령이 서독행을 결심한 것은 차관 때문이었다. 정부는 외자로 수출산업을 육성하려했지만 달러를 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미국조차 무상원조를 받는 나라에 차관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고 일본과는 국교수립도 안된 상태였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120여 개 국가 가운데 우리보다 소득이 떨어지는 국가는 인도 뿐이었다. 외자도입이 마치 ‘매국(賣國)’으로 오해받던 시절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제2의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서독으로 달려갔다.

12월 10일 오전, 박 대통령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루르지방의 한국 광부를 찾았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그러다가 “조국이 가난해서…”라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장내는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광부들은 동행한 뤼브케 서독 대통령에게 절을 하며 울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뤼브케도 울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박 대통령이 계속 눈물을 흘리자 뤼브케는 손수건을 직접 건네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서독 의회에서도 “돈을 빌려주세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거짓말할 줄 모릅니다”를 반복하며 말했다. 한국이 보내준 광부와 간호사 덕분이었는지 서독은 박 대통령에게 4000만 달러의 차관을 약속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이 때 구상됐다. 박 대통령이 독일이 자랑하는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직접 주행해보고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실감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귀국하자마자 ‘수출진흥회의’를 만들어 이듬해 1월 첫 회의를 연 이래 1979년 사망할 때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며 수출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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