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김옥균,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

풍운아 김옥균이 1884년 12월 6일 33세의 젊은 나이로 망명길에 오른다. 이틀전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 때 거사한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박영효·홍영식·서재필 등 9명의 동지들도 함께했다. 일본행은 4번째였다. 오랫동안 꿈꿔온 자주독립과 근대국가 실현이 거사 3일 만에 좌절된 것을 두고 사람들은 ‘3일 천하’라 했다.

김옥균과 개화파는 청군과 명성황후 정권의 견제와 탄압을 피해 무장정변을 모색하던 중 청군 1500여 명이 안남(베트남) 전선으로 파병되어 국내에는 1500명밖에 없었고, 그나마 청군이 안남에서 프랑스군에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거사를 단행했다. 일본군 150명도 가담했다. 초기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돼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우궁으로 옮기고, 한규직·윤태준·민태호·민영목 등 수구파들을 처단할 수 있었다. 12월 5일 신정부를 수립하고 밤새 혁신정강을 제정, 이튿날 공포하지만, 정세를 살피던 청군이 무력개입을 시작하면서 개화파와 일본군은 속수무책으로 패하고 만다.

일본 정부의 냉대 속에 오가사와라·홋카이도 등지를 전전하던 김옥균은 일본 생활 10년째 되던 1894년 상하이로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그리고 3월 28일, 상하이 내 미국 조계에 있는 일본여관 ‘동화양행’ 1호실에서 수구파 자객 홍종우가 쏜 총탄 3발을 맞고 숨을 거둔다. 인고의 10년 세월이 다시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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