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조난신호 ‘SOS’ 국제적으로 채택

‘전파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글리엘모 마르코니는 무선전신기를 처음 발명(1896년)하고, 영국·캐나다 간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선전신을 성공(1901년)시켜 이 분야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러나 무선전신 체계를 자신의 무선전신기를 선적한 배에서만 육지와 교신할 수 있도록 배타적으로 운영, 다른 나라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때문에 1906년 11월 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개최된 ‘국제무선전신회의’는 국제적인 무선전신 규약을 제정함으로써 해상에서 잇따르는 대형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지만 마르코니에 대한 반발심도 일부 작용했다.

회의에서 상호통신 의무, 조난통신 절대 우선권 등의 무선조약이 채택됐고 기술적으로 가장 큰 문제였던 주파수 분배도 해결돼 500㎑와 1000㎑ 2개 주파수는 해상의 공중통신용으로, 188∼500㎑는 군사용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조난신호로 ‘SOS’가 채택됐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마르코니사가 정한 ‘CQD(come quick danger)’가 조난신호로 사용됐으나 기상이 나쁘면 수신이 불량했고, 모스 부호로 각각 세 번씩 짧게, 길게, 짧게 보내는 ‘SOS’보다 전송과 해독이 어려웠다. ‘save our souls’ ‘save our ship’의 약자라는 설이 있으나 일설에 불과할 뿐이다.

SOS 신호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1912년에 침몰된 타이태닉호였다. 해운 사상 전례없는 대참사에서 700명 이상의 생존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SOS 덕분이었다. 100년 가까이 조난신호의 대명사로 쓰이다가 1999년 국제해사기구(IMO)가 모스 부호를 폐기하고 조난신호를 인공위성을 이용한 세계해상조난 안전체제(GMDSS)로 대체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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