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독일 전쟁 지도자들의 전쟁 책임을 재판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개정

독일 전쟁 지도자들의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한 역사상 첫 국제군사재판이 1945년 11월 20일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개정되었다. 독일 항복 후인 1945년 8월 미국·영국·소련·프랑스가 작성한 사후법인 ‘국제군사재판 조례’에 기초해 마련된 재판은 승전국들이 임명한 판·검사에 의해 진행됐다. 이때문에 피고 측으로부터 “이 재판은 ‘범죄행위 이전에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써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전쟁은 이성과 합치되는 법이 드물어 재판은 계속 진행됐다.

히틀러의 두뇌로 불렸던 헤르만 괴링, 감옥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아 적은 루돌프 헤스, 외무장관 폰 리벤트로프 등 24명의 나치 고위 관료와 장성들이 반평화죄, 반인도죄, 전쟁 범죄, 범죄 음모죄 등 4개 죄목으로 기소됐다. 법정은 긴장으로 팽팽했고 피고들은 날카로워 있었다. 사상최대의 인명 피해와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20세기 최악의 범죄를 단죄하는 역사적 재판은 11개월 동안 403차례의 공판을 거쳐 1946년 10월 1일에 막을 내렸다. 자살자와 정신이상자를 제외한 22명 가운데 19명에게 유죄, 3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행방불명으로 궐석재판을 받은 보르만을 포함, 괴링 등 12명은 교수형, 헤스 등 3명은 종신형, 다른 4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은 1946년 10월 16일 폰 리벤트로프부터 집행됐다. 그는 “세계의 평화를 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졌으나 괴링은 처형 직전 청산가리를 삼키고 자살, 재판 결과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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