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이순신 장군 전사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했다. 이로써 7년을 끌어온 임진왜란도 사실상 파장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전남 순천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도 한시바삐 조선에서 물러나고자 했다. 이런 그에게 최대 고민은 길목을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고니시는 명나라 장군을 통해 퇴로를 열어보려 했으나 이순신의 반대로 이마저 어려워지자 인근의 일본 수군에게 도움을 요청, 500여 척의 함선을 긁어모았다.

남해와 하동 사이의 노량으로 적선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 장군이 그들을 격퇴할 해전에 나선 것은 1598년 11월 18일(음력)이었다. 그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노량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500여 척에 달하던 일본 함대는 불과 50여 척 남짓 만 온전한 채 남해 쪽으로 도주했다. 이 해전으로 전쟁도 사실상 끝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전투 그것도 승리가 확정된 전투 끝 무렵인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새벽 갑자기 날아온 탄환이 이순신의 왼쪽 가슴에 꽂혔다. 이순신은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은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무찌른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나를 넬슨에게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고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는 “이순신은 어느 면으로보나 실재(實在)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적인 군인”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순신의 죽음을 둘러싸고 입증할 수는 없지만 그럴듯한 근거를 내세워 ‘자살설’ ‘은둔설’ 등 각종 설들을 제기해 한동안 혼란이 있기도 했다. 자살설, 은둔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미 모진 고초를 겪어본 이순신은 전쟁이 끝난 후의 상황전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는 것이다. 살아남아도 잠시 영웅으로 추앙받기는 하겠지만 당쟁이나 선조에 의해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 싸움터에서 죽음을 선택하거나 죽음을 위장해 은둔하려 했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자살설은 충무공이 아예 처음부터 방탄조끼와 갑옷을 입지 않고 붉은 복장만 한 채 아침 8시의 빛나는 태양에 노출된 상태에서 싸우다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사실상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은둔설은 조카와 측근 등의 도움을 받아 전사로 가장한 다음 초야에 묻혀 16년을 더 살다가 1614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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