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영·불·독·이 4개국 정상, 체코 일부 영토를 독일에 넘긴다는 ‘뮌헨협정’ 서명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침공·합병한 히틀러가 다시 발톱을 세워 9월 초 체코령 주데텐란트를 요구했다. 체코는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주데텐란트에 독일계 주민 300만 명이 거주하고 있긴 하지만 그곳은 체코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주요 공업지대였다. 9월 15일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독일로 날아가 히틀러와 마주앉았으나 향후 1주일간 무력침공을 자제하겠다는 언질만 받아냈다.

독일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던 체임벌린은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와 이 문제를 협의한 끝에 체코를 독일에 넘기기로 결론을 내렸다. 체코는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 우리를 희생시킨다”고 볼멘 소리만 했을 뿐 영·불의 합의를 따라야 했다. 힘없는 국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히틀러는 22일의 두 번째 회동에서 주데텐란트를 즉시 넘기라는, 전보다 더 강경한 조건을 제시했다. 체코와 영·불은 더이상 밀려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총동원령을 내리고 함대까지 동원하는 등 법석을 피웠다. 하지만 히틀러가 최후통첩을 보내자 영·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내리며 타협으로 방향을 틀었다.

9월 29일, 당사국인 체코는 제외시킨 채 뮌헨에 모인 체임벌린·달라디에·히틀러·무솔리니는 밤샘 협상 끝에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도한다는 ‘뮌헨협정’에 서명했다. 체코에는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체임벌린에게는 “전쟁을 예방한 영웅”이라는 영국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심지어 노벨평화상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듬해 3월 히틀러가 체코의 나머지 영토까지 점령함으로써 체임벌린은 평화의 사도에서 굴욕외교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평화는 결코 유화정책으로 얻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가르쳐준 대표적인 외교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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