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한국 아동문학계의 큰 별’ 마해송 사망

한국최초의 창작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1923년)을 어린이 잡지 ‘샛별’에 발표해 우리나라 창작동화의 길을 열고, 색동회 회원으로 어린이 문화운동을 펼쳤던 ‘한국 아동문학계의 큰 별’ 마해송이 1966년 11월 6일, 향년 61세로 숨을 거뒀다. 정초에 미리 써놓은 유언장에는 “공부도 재주도 덕도 부족한 몸으로 외롭단 인생을 외롭지 않게 제법 흐뭇하게 살고 가게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라고 씌어었었다. 그의 죽음으로 서울 명륜동에서 20여년을 살다 정릉으로 옮긴 감회를 조선일보 ‘일사일언’ 난에 7차례 연재했던 ‘이사기(移徙記)’가 고인의 마지막 글이 됐다.

마해송은 전래동화를 편집하거나 외국동화를 번역하는 작가가 아니었다. 한국최초의 창작동화를 쓴 작가였고 수필가였다. 한문투 번역투의 글들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도 그의 글은 언제나 간명하고 깔끔했다. 한 문학평론가의 말마따나 마해송은 “개화기 신문화 이후 몇 안되게 손꼽히는 간결하고 아름답고 힘있는 문장”을 구사했다. 생전에 마해송이 글을 쓰는 모습을 본 한 문인은 “조그마한 소반위에 원고지를 놓고 방석을 깔고 단정하게 꿇어앉아 만년필로 글을 썼다”고 전한다.

마해송은 경기 개성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를 졸업한 뒤 일본의 ‘문예춘추’ 편집장을 지내고 1930년에는 ‘모던 니혼’을 창간해 일본 문화계를 주름잡았던 글로벌 지식인이었다. 일제 때는 우화적인 기법을 통해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을 일깨우려 했고, 광복 후에는 사회성과 주제의식이 강한 동화를 썼다. 이 점에서 그는 소파 방정환과는 달랐고, 평소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던 소파 방정환의 영웅주의와 눈물주의를 비판했다. 광복 후에도 어린이 관련 활동을 멈추지 않아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 초안을 썼다. 재미 의사 겸 시인 마종기가 그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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