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1860년~1870년대에 겨우 국가 통일을 완성하고 밖으로 눈을 돌렸을 때 아프리카의 주요 지역 대부분은 이미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지중해 맞은 편의 북아프리카로 관심을 돌렸으나 이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알제리는 이미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고, 이집트는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뒤늦게 에티오피아를 넘보았으나 에티오피아군에 참패해 국제적으로 망신을 샀다.
이탈리아가 마지막으로 눈독을 들인 곳은 당시 오스만투르크 지배 하에 있는 지중해 맞은 편의 트리폴리와 키레나이카였다. 현재의 리비아 땅이다. 20세기 초부터 일고있는 ‘실지회복운동’도 침략을 부채질했다. 실지회복이란 과거 오스만 제국이나 오스트리아에 빼앗긴 이탈리아 땅에 대한 권리주장이다. 1908년 오스만 제국의 전권을 장악한 청년투르크당이 트리폴리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들에 대해 압력을 강화한 것도 침략에 좋은 구실이 됐다. 침략을 늦추는 것은 오스만 투르크 배후에 있는 독일만 이롭게 할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1911년 9월 29일 이탈리아군이 트리폴리에 상륙했다. ‘이탈리아·오스만투르크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트리폴리 전쟁’으로 불린 이 전쟁 역시 20세기 초의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 중 이탈리아는 세계최초로 비행기 조종석에서 수류탄을 떨어뜨리는 공중폭격을 단행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군이 1주일만에 트리폴리를 점령하고 11월 5일 트리폴리 병합을 선언한 뒤 내륙 진출을 꾀했으나 구식의 라이플로 무장한 사막의 전투부대에 막혀 전진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투르크는 역시 ‘종이 호랑이’였다. 결국 1912년 10월 열강의 조정으로 휴전이 성립했을 때 투르크는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영토의 상당부분을 이탈리아에 넘겨주어야했다. 이 전쟁으로 투르크의 허약함을 알게 된 발칸반도의 여러 민족들은 발칸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은 1차대전의 불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