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오전9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을 태운 열차가 만주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곧 일본인 환영 인파 쪽으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엄중한 경고였다. 3발을 맞아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중얼거리다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3명의 수행원들도 중경상을 입었다.
거사 후 안 의사는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만세)’를 연창한 뒤 현장에서 러시아군에 체포됐다. 1907년 고종이 폐위되고 조선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안 의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았다. 의병 지원자가 300명에 이르자 이범윤을 총독, 김두성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참모중장이 돼 두만강 부근의 노브키에프스크를 근거지로 삼아 3차례나 국내 진공작전을 펼쳤다. 1909년 이토가 북만주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안 의사는 이토의 열차가 지나는 하얼빈과 채가구를 거사 장소로 정했다. 채가구에는 우덕순과 조도선을 배치하고 자신과 유동하는 하얼빈을 지켰다.
열차가 채가구를 지나치는 바람에 운명의 주사위는 그의 손에 쥐어졌다. 거사 당일 안 의사는 신문기자로 위장해 일본인 인파 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9시30분쯤, 그의 앞을 지나는 이토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안 의사는 재판 중에도 “나를 일반 살인피고로 취급하지 말고 전쟁포로로 취급하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여 일본인 검사와 간수들까지 감복시켰다. 1910년 3월 26일, 밖에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