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국의 유엔 가입과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1971년은 ‘죽의 장막’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첫 해였다. 대표권 분쟁을 둘러싼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일이 첫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대만을 지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타진하고 있었다. 4월에는 탁구 선수단을 중국에 보내 이른바 ‘핑퐁외교’의 물꼬를 텄고, 6월에는 닉슨 미 대통령이 대(對) 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해 화해 제스처를 내비쳤다. 이 와중에 6월 11일,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이제까지의 대만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중국을 승인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대만 63개국, 중국 62개국이었던 수교국가 수가 하루 만에 역전됐다. 국제적인 세력판도가 중국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여세를 몰아 유엔가입을 추진했다. 10월 25일, 제26차 유엔총회에서 중국의 유엔가입과 대만의 유엔축출을 명시한 이른바 ‘알바니아안(案)’이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 불참 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대만 대표는 중국이 건국 22년 만에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순간이 보기 싫어 표결하기 전 유엔 탈퇴를 선언하고 총총히 대회장을 떠났다. 투표에 앞서 미국·일본 등 22개국이 제안한 ‘역 중요사항안’이 부결됨으로써 중국의 유엔 가입은 이미 대세로 기운 상태였다. ‘역중요사항안’이란 중국의 유엔가입-자유중국 추방을 제안한 알바니아안이 성립하려면 유엔 가맹국 3분의 2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는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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