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마거릿 생어, 美 최초의 산아제한클리닉 개소

20세기 초에는 ‘산아제한’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는 것 자체가 음란이었고 금기였다. 신을 거역하는 인간의 죄악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 금기를 처음 깬 사람이 마거릿 생어다. 가난한 가정의 11자녀 중 6번째로 태어난 생어가 어머니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언제나 임신중이거나 아이를 돌보는 모습뿐이었다. 48세에 숨진 어머니를 통해 잦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건강에 끼치는 폐해를 깨달은 생어는 간호사가 돼 피임법의 전도사가 되었다. ‘산아제한(birth control)’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도 생어였다.

1914년 3월 발간된 잡지 ‘여성 반란’은 산아제한운동의 신호탄이었다. 그는 잡지에서 “여성 자신이 육체의 주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잡지는 우송 불가물로 판정받고 곧 폐간됐다. 음란출판물을 발행·배포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비난이 계속 쏟아지자 1년간 영국에 피신했다 돌아온 생어는 전국적인 순회강연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전파하고, 1916년 10월 16일에는 미국 최초의 ‘산아제한 클리닉’을 뉴욕 브루클린에 개소했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 이민자와 유대인이 주로 거주하는 하층 노동자 빈민가로 인구과밀 지역이었다. 9일 동안 464명이나 다녀갈 정도로 여성들이 큰 관심을 보이자 개소 10일째 되는 날 경찰이 들이닥쳤다.

생어는 재판에서 30일간의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으나 “성예방과 치료를 위해 여성에게 피임기구를 제공할 권한을 의사에게 준다”는 판결을 이끌어내 산아제한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1923년에는 의사가 진료하는 산아제한연구클리닉이 뉴욕에서 문을 열었다. 1936년에 ‘환자의 생명을 구할 목적으로 의사들이 피임약을 처방할 수 있다’는 연방법원의 판결을 받아낸 것도, 1937년에 미국의학협회가 ‘의과대에서 피임에 관한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결의를 끌어낸 것도 생어의 길고 긴 투쟁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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