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15일,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 마타 하리가 파리 교외에서 총살돼 41세로 생을 마감했다. “마타 하리가 훔친 군사기밀은 연합군 5만 명의 죽음에 상당하는 것”이라는 게 당시 프랑스 군사법정이 밝힌 사형선고 이유였지만 프랑스 정부가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밝히지 않아 지금까지도 스파이 활동에 대한 사실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군장교와 결혼, 남편 근무지인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 5년간 생활할 때 만해도 마타 하리는 그저 발리섬의 민속춤에 흥미를 가졌던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 돈 한 푼없이 파리에 정착하면서 그의 인생은 격류에 휩싸인다. 먹고살 일이 막막해지자 인도네시아어로 태양을 뜻하는 ‘마타 하리’로 이름을 바꾸고 스트립댄서로 나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국적인 춤과 관능적인 몸짓에 파리 사교계는 몸이 달았고 그는 서서히 국제적인 고급 콜걸로 변신해갔다. 독일 첩보기관이 그를 포섭, ‘H21’이란 암호명을 부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마타 하리는 보다 높은 수입을 위해서라면 이중 스파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빼낸 정보를 프랑스에도 넘겼다. 1917년 2월 체포된 경위에 대해서도 영국 첩보기관이 통신문을 해독, 이를 프랑스에 알렸다는 설과 독일이 그의 효용가치가 떨어지자 프랑스에 고의로 암호문을 흘렸다는 설 등으로 갈렸다. 1999년 비밀해제된 영국 첩보기관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마타 하리는 군사정보를 실제 독일에 제공한 증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술 더 떠 마타하리 재단은 “프랑스가 선전전에 이용할 목적으로 그녀를 처형했다”고 주장한다. 스파이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서 이용당하다 희생된 불쌍한 무용수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