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파리서 실종

저녁 7시, 파리의 한 카지노에서 나간 이후 그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79년 10월 7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갑자기 파리에서 실종됐다. 실종 사실도 5일이나 지난 후에야 알려졌다. 파리경찰의 조사결과 김형욱은 10월 1일 뉴욕에서 파리에 도착, 특급호텔인 리츠호텔에 묵다가 이날 2류호텔인 웨스트엔드 호텔로 옮겨 짐을 풀고 오전 11시30분쯤 ‘키 큰 동양인’과 함께 카지노에 들렀었다. ‘키 큰 동양인’의 실체는 파악됐으나 그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샹젤리제 노상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카지노에 동행했다가 자신은 먼저 나왔다”는 것이다.

실종을 둘러싸고 야쿠자나 마피아에 의한 청부 살해설, 돈을 노린 카지노 관련 폭력집단의 범행설 등 여러 설들이 무성했지만 사람들은 우리 정보기관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1963년부터 6년 3개월 동안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며 박정희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역을 하다가 박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져 1973년 미국으로 망명, 미 의회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 박 대통령의 표적이 됐다는 게 근거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김형욱 만을 겨냥한 위헌적인 특별조치법(1977년)까지 만들 정도로 김형욱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김형욱이 미국에서 3공화국과 유신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출간하려 할 때 150만 달러를 제시하며 막후 협상을 벌였던 김재규 중정부장과, 박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할 줄 아는 불같은 성격의 차지철 경호실장이 주로 배후인물로 지목받아왔다.

훗날 월간조선은 김재규의 특명을 받고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앙정보부 요원이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 프랑스 현지 조직폭력배들이 김형욱을 살해하고 유학생은 시신을 확인한 뒤 돈을 조폭들에게 건넸다고 보도해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사건 관련자들이 이미 죽었거나 입을 다물고 있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1991년 서울 가정법원이 실종 5년만인 1984년 10월 7일자로 실종선고를 내려 김형욱은 현재 법적으로는 사망자로 처리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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