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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부부 ⑧] 안동 원이엄마의 412년 전 편지… 황망하게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어느 젊은 여인의 절절한 사부곡(思夫曲)

↑ 원이엄마 한글편지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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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원이 아버지께

 

차분히 읽어본다. 지금부터 435년 전, 31살 젊은 나이에 황망하게 떠난 남편에게 쓴 어느 여인의 편지다. “원이 아버지께 올림,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로 시작되는 편지는 애틋하면서도 절절하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갖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원이엄마 동상. 안동 시내 ‘원이엄마 테마공원’에 있다.

 

가로 58.5㎝, 세로 34㎝의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써내려간 한글고어체(언문) 편지엔,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한 아내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흐른다. 함께 누워 속삭이던 일에서부터 뱃속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서러운 심정,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대목대목마다 가슴 저미는 사연이 이어진다.

그토록 사랑했던 지아비가 세상을 떠난 황망한 와중에 뱃속에 아이까지 품은 젊은 아낙이 어떻게 먹을 갈아서 이토록 절절한 편지를 쓸 수 있을까? 편지에는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남편을 그리는 사부곡이 시계 방향으로 여백 하나를 남겨두지 않은 채 빽빽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다. 한지 오른쪽 끝에서부터 써내려간 편지는, 왼쪽 끝까지 가득 채우고 모자라 위 여백으로 이어진다. 그러고도 모자라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다시 글 첫머리 쪽 여백에 거꾸로 씌어 있다.

편지에서 가장 뭉클한 것은 이 대목이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읽고 또 읽어도 435년 전 부부의 사연이 애틋하면서도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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