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국내 첫 고유모델이자 양산형 자동차 ‘포니’의 등장과 현대차의 성장사

↑ 포니 자동차 모습

 

by 김지지

 

현대자동차가 자사 헤리티지(옛 유산) 강화에 공을 쏟고 있다. 2023년 5월 18일 이탈리아에서 가진 ‘현대 리유니언’ 행사에서 49년 만에 복원한 ‘포니 쿠페’ 콘셉트카를 공개한 데 이어 6월 9일에는 국내 첫 양산형 자동차이자 브랜드 최초 독자 모델인 ‘포니’의 역사와 실제 차량을 살펴볼 수 있는 ‘포니의 시간’ 전시회(6월 9일~10월 8일)를 서울 강남구의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개최했다. 대한민국 최초 고유모델인 ‘포니’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대차가 어떻게 성장해 급기야 세계 3위 자동차회사로 도약했는지 그 성장사를 살펴본다.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했을 때 ‘포니 쿠페’ 콘셉트카 모습

 

국산 자동차 개발 노력은 외국업체와의 기술제휴 방식으로 시작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본격적인 출발은 1955년 8월에 출시된 ‘시발’ 자동차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출발’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시-바ㄹ(始發)’ 자동차는 수공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본격적인 자동차 산업의 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국내 인력이 직접 조립한 자동차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8년간 생산된 3000여대가 길거리를 질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1962년 8월 생산을 시작해 ‘시발’차의 문을 닫게 할 정도로 2년 동안 상종가를 쳤던 ‘새나라’ 자동차는 근대적 생산라인을 갖춘 대규모 조립공장을 세웠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새나라’ 자동차 역시 일본 닛산의 ‘블루 버드’ 승용차를 사실상 완제품이나 다름없는 반제품 상태로 들여와 조립했기 때문에 순수 국산자동차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에도 국산 자동차 개발 노력은 거의 예외없이 외국업체와의 기술제휴에 의한 생산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신진자동차는 1966년부터 ‘도요타 코로나’를, 아세아자동차는 1970년부터 ‘피아트124’를 조립·생산했다. 1967년 12월에 설립된 현대자동차도 포드자동차의 영국법인이 생산해온 ‘코티나’ 2세대 모델을 1968년 11월부터 조립·생산해 국내 소형승용차 시장은 3파전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연간 2만대였고 대부분은 영업용 차량(택시)으로 팔려나갔다. ‘현대 코티나’는 경쟁 모델들보다 큰 차체와 넉넉한 출력이 강점이었지만 열악한 도로 사정 때문에 다른 택시들에 비해 고장이 잦다는 게 문제였다.

포드 코티나

 

현대자동차는 자체 기술력 없이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조립 생산자의 한계를 느끼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지형에 맞는 고유모델을 독자생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는 내수보다는 수출을 위한 정주영 회장의 포석이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는 고유모델 생산 전 단계로 1970년 5월 포드자동차와 새로운 합작사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포드자동차가 합작공장 설립을 차일피일 미뤄 합작회사 설립은 1973년 1월 무산되었다.

결국 현대는 국내 최초로 고유모델을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고유모델을 개발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드는 데다 5만대를 팔아야 겨우 본전이기 때문에 사내외에서 고유모델 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뜻을 굽힐 정주영 회장이 아니었다. 원천기술 문제는 1973년 9월 엔진(1238cc 새턴 엔진)을 비롯 주요 부품을 들여오기로 일본의 미쓰비시와 기술협조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풀고, 엑셀러레이터와 트랜스미션 등 주요 부품 제작 기술은 영국으로부터 들여오기로 했다.

 

‘포니’ 생산으로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국으로 발돋움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산업은 초창기 단계였고 신차를 디자인할 수 있는 인력은 전무했다. 현대자동차는 유럽에서 차체 디자인을 해줄 회사를 수소문한 끝에 ‘이탈 디자인’을 선택했다. 이탈 디자인은 1968년 설립된 신생 회사였으나 창업자인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청년기부터 이탈리아 피아트의 다양한 차종을 비롯해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 VW 골프를 디자인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리던 30대의 젊고 유망한 디자이너였다. 현대자동차는 주지아로가 1973년 10월 완성한 4종의 디자인 중 곧 ‘포니’로 이름 붙여질 ‘꽁지 빠진 닭’ 모양의 디자인을 선택했다.

현대는 이후 과정을 숨가쁘게 진행했다. 1974년 2월 자동차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3월부터는 프로토타입(시제품) 제작에 착수했다. 1974년 7월에는 연간 생산능력 5만6000대 규모의 자동차공장을 울산에 착공하고 같은해 10월에는 포로토타입으로 제작한 ‘포니’와 콘셉트가 ‘포니 쿠페’ 시제품을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자동차박람회(모터쇼)에 출품했다. 토리노 모터쇼에는 16개국 65개 회사가 차량 245대를 출품했는데, ‘포니’는 자동차 불모지 한국에서 출품한 고유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사실 주지아로는 포니와 포니 쿠페 말고도 이후 현대차가 생산한 프레스토, 쏘나타 1, 2도 디자인했다. 1981년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하는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도 그의 작품인데, 포니 쿠페 디자인을 하며 받은 영감을 이때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5년 12월 1일 마침내 울산 자동차 제1공장이 준공하고 1976년 1월 포니가 본격적으로 생산됨으로써 우리나라는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국으로 발돋움했다. 1976년 1월 26일부터 계약을 받아 2월 29일 주문 고객에게 처음 출고된 당시 포니의 가격은 227만원(자가용), 204만원(영업용)이었다. 서울 흑석동의 기와집(82.6㎡) 한 채 가격이 250만~350만 원일 때였다.

현대차가 ‘포니’ 첫 차의 생산 순간을 기념하고 있는 모습

 

여기서 잠깐. 현대차가 기념하는 첫 출고일은 2월 29일이다. 그런데 당시 매일경제에 따르면 3월 5일 혹은 3월 2일로 되어 있다. <소형승용자 포니, 5일부터 출고>(1976년 3월 3일자) 제목의 기사에는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소형승용차 포니가 5일부터 본격 출고될 예정”이라고 쓰여있고, <경기 회복 힘입어 승용차 수요급증>(5월 4일자) 제목의 기사에는 3월 2일로 되어있다. 1976년 매일경제 다른 기사에도 일자는 없지만 3월 출고로 나온다. 그리고 2월 29일이 일요일이라는 점에서 현대차는 이 역사적인 날자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매일경제 <소형 승용차 포니 5일부터 출고>(76년 3월 3일자) 제목의 기사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1974년 10월 17일 첫선을 보인 기아의 ‘브리사’가 시장 점유율 55.5%(1975년)를 차지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브리사는 일본 마쓰다의 ‘패밀리아’ 보디를 기초로 국산 엔진을 얹어 1974년 10월부터 국내 최초의 일관공정 시스템을 통해 생산을 시작했다. 국산화율은 포니보다도 높았지만 결국에는 ‘포니’에 밀려 1년을 조금 넘기다 무너졌다.

 

10년간 대한민국 1위 모델로 자리매김

포니는 ‘대량 생산’을 목표로 개발된 첫 ‘국산 고유 모델’이라는 점에서 가치와 진가를 인정받았다. 현대자동차 설명에 따르면 당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각국 브랜드의 고유 모델을 기준했을 때, 한국은 기존 8개 자동차 공업국(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체코)에 이어 9번째 고유 모델 출시 국가였다.

포니는 출시되자 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포니가 출시된 1976년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총 2만 4618대였는데 포니 단일 모델이 그해 1만 726대가 판매되면서 43.6%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국내 승용차 판매 점유율의 67%(포니1, 2 합산 기준)를 차지했다. 이처럼 포니는 출시 첫해부터 포니1이 단종되는 1985년까지, 약 10년간 대한민국 1위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1987년 8월 전국에 등록된 77만5900대의 자동차 가운데 50%나 되는 37만6000대가 포니 계열(포니1, 2, 포니 왜곤, 포니 픽업)의 자동차인 것으로 조사되어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왼쪽부터 포니 픽업, 포니 웨건, 포니2

 

포니는 출시 수개월 만에 해외로도 수출되었다. 1976년 2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보내 시험 운행토록 한것을 시작으로 1976년 6월 남미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을 비롯 1976년 한 해 동안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1019대의 포니와 포니픽업 등을 팔았다. 첫 수출국인 에콰도르로 떠날 때 바나나를 실은 배를 이용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에콰도르 무역 규제상 바나나를 수출했다는 면장이 있어야 자동차를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7년에는 7,427대를 30개국에, 1978년에는 1만 8,317대를 40개국에 수출했다. 수출 지역도  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확대되었다. 현대자동차의 수출 성과에 고무된 정부는 1979년에 자동차 산업을 10대 수출전략산업으로 선정했다. 1982년 7월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했는데 당시 수출 대상국은 약 60개국에 달했다.

1976년 6월 포니가 에콰도르 항구에 하선되고 있다

 

현대차, 2022년 사상 첫 글로벌 판매 3위에 올라

포니의 후속모델로 1985년 생산을 시작한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처음 상륙한 것은 포니 생산 후 10년만인 1986년 2월이었다. 엑셀과 프레스토는 1986년 16만8000대, 1987년 26만3000대가 미국에서 팔려나가 1987년 미국 전체 수입 소형차 판매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차의 경쟁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하지만 낮은 품질과 서비스 등으로 결국에는 미국 소비자의 신뢰를 잃으면서 점차 하향곡선을 그렸다. 이후 포니는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조롱을 받았다. 정비망을 구축하지 못하고 품질관리도 엉망이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세계 자동차업계의 대형화가 세계적인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을 때는 위기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85년 2월 8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포니엑셀 신차 발표회에서 포니엑셀을 지켜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경쟁력은 없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선두주자였다. 그랜저(1986년), 쏘나타(1988년), 엘란트라·스쿠프(1990년), 쏘나타2(1993년), 엑센트(1994년), 아반떼(1995년), 아토스(1997년) 등을 연이어 생산하고 1991년 한국 최초로 알파엔진을 독자 개발했으며 1996년 남양종합기술연구소를 준공했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는 기반을 마련한 것은 IMF 때이던 1998년 12월 기아차를 인수하고 나서였다. 기아차와 현대차를 합쳐 연매출이 20조나 되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전기가 된 것은 1998년 12월 3일 정몽구의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취임이었다. 정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품질 경영을 경영철학의 전면으로 내세웠다. 취임 직후 서울 본사에 품질상황실을 만들어 24시간 고객 민원을 받게 했다.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생산라인을 중단하거나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품질 경영을 다그쳤다.

이후 현대·기아차의 성장속도는 눈부셨다. 정몽구 회장이 취임한 1998년에는 143만대를 팔아 글로벌 12위였으나 이후 210만대(1999년), 257만대(2000년)를 팔아 글로벌 10위에 올라섰다. 이후에도 377만대(2005년), 464만대(2009년)를 거쳐 2010년 575만대를 판매해 마침내 GM, 폴크스바겐, 도요타, 르노-닛산에 이어 글로벌 빅5에 진입했다. 2021년 GM을 제치고 4위에 오르더니 2022년 684만대를 판매해 도요타·폴크스바겐에 이어 사상 첫 글로벌 판매 3위에 올랐다.

한편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했던 콘셉트카 ‘포니 쿠페’는 포니가 1976년 1월 출시되어 국민차 명성을 얻은 것과 달리 1979년 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와 대량생산 계획 취소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모터쇼에 출품했을 때의 차까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행히 포니 쿠페를 디자인한 주지아로의 창고에 포니 쿠페 설계도와 차 사진이 있는 것을 알고 주지아로에게 복원을 맡겨 2023년 5월 차체와 엔진, 실내까지 1974년 당시와 완전히 똑같이 재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포니 쿠페 복원 차량 앞에서 정의선 회장(왼쪽)과 포니 쿠페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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