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사 (출처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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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선운산 도립공원의 두 축은 산행(선운산)과 산책(선운사~도솔계곡)이다. 천천히 산책하면서 둘러볼 곳을 소개한다.
■도솔계곡 일원… 국가문화재 명승
선운산의 또 다른 매력은 계절마다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 꽃과 나무들이다. 3월말~4월중순이 되면 선운사 대웅전 뒤에 피는 수백 그루의 ‘동백나무 숲’과 4월의 벚꽃, 여름에는 도솔천계곡 주변 10만여 평의 녹차 밭과 계곡을 뒤덮은 녹음, 9월 중순 시작되는 꽃무릇 군락, 11월 초 온 산을 뒤덮는 애기손 단풍에 겨울의 산사 설경이 더해지니 시각적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그 덕에 ‘선운산 도솔계곡 일원’ 전체가 2009년 9월 국가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도솔계곡 일원에서 자라는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 등 3점은 천연기념물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순서대로 꽃과 나무들을 소개한다.
▲송악…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덩굴식물
주차장에서 매표소로 가기 전, 먼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왼쪽 개울 건너편 절벽 전체를 뒤덮고 있는 송악이다. 줄기를 부챗살처럼 펴고 15m 넘게 올라간 모습이 장관이다. 송악은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바위를 올라타 절벽을 완전 뒤덮는 덩굴식물이다. 잎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짙은 녹색이다. 겨울에도 잎이 한여름처럼 싱싱하고 기운이 넘친다. 송악은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화분의 빈 공간을 채우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개조해 만든 ‘서울로7017’에 가보면 대형 화분에 나무를 심고 빈 공간에 아이비를 심은 것을 볼 수 있다.
송악 꽃은 10~11월에 황록색으로 공처럼 둥글게 모여 피는데, 이듬해 봄에 꽃 모양 그대로 열매가 검은색으로 익는다. 이 열매가 늦으면 6월까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소가 잎을 잘 먹는다고 소밥나무 또는 소쌀나무라고도 부른다. 국내 송악 중 가장 크고 수령도 오래되어 천연기념물(제367호)로 지정되었다.
▲꽃무릇 군락… 진한 붉은색 꽃 지면 진초록으로 남아
초입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꽃무릇 군락이다. 겨울과 봄에는 푸른 잔디를 깐 것처럼 펼쳐져 있다. 이파리만 무성하게 돋아나 ‘살찐 부추’ 같기도 하다. 초가을에 진한 붉은색 꽃을 피우고는 늦가을에 진다. 그후에는 진초록의 잎이 나와 겨울을 보내는데 그 덕분에 선운산 일대는 겨울에도 드문드문 초록을 유지하고 있다. 진초록 잎은 다음해 초여름이면 모두 사라진다. 땅속으로 들어가 알뿌리의 부식토로 자신들을 헌정한 것이다. 그러다가 가을이 오면 불쑥 꽃대 하나를 내민다. 그 꽃대는 점점 키가 커져 마침내 붉은 꽃을 매단다. 그것이 ‘꽃무릇’인데, 꽃대가 마늘대처럼 이파리 하나 없이 밋밋해서 석산(石蒜)이라고도 부른다. 한자를 직역하면 ‘돌마늘’이다. 10월이 가고 11월이 오면 꽃은 어김없이 스러지고 그 자리에 다시 무성한 잎이 돋아난다. 이렇다 할 열매도 없이 꽃은 그냥 사라진다.
선운산 산책길 안내판에 ‘잎이 진 후에 꽃이 피고 꽃이 진 후에 잎이 나기 때문에 입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다는 애틋한 연모의 정을 갖고 있어 일명 상사화’라고 되어 있는데 설명 대부분은 맞지만 상사화는 아니다. 모양이 비슷한 상사화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사화 역시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는 꽃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꽃무릇과 유사하긴 해도 엄연히 다른 꽃이다. 상사화는 봄에 잎만 나와 6~7월쯤 마른 다음 8월쯤 꽃대가 올라와 연분홍색 꽃이 핀다. 이와 달리 꽃무릇은 상사화가 질 무렵, 그러니까 초가을에 진한 붉은색으로 꽃을 피운 뒤 꽃이 지면 새잎이 돋아나 겨울을 난다. 꽃무릇은 탱화를 그릴 때 재료로 쓰여 사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영광 불갑사와 고창 선운사가 꽃무릇의 자생지로 유명하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이라 다 사람들이 비늘줄기를 나누어 심은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꽃무릇이든 상사화든 사람이 알뿌리를 분리해줘야 잎이 나고 꽃이 핀다는 것이다. 중국으로 추정되는 원산지에서는 스스로 잎이 나고 꽃을 피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스스로 결실을 맺지 못해 사람이 알뿌리를 분리해줘야 한다.
▲봄날 동백나무숲…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펴
선운산의 또 하나 명물은 선운사 입구 오른쪽 비탈에서부터 절 뒤쪽까지 약 30m 너비로 숲을 이루고 있는 동백나무숲이다. 수령이 500여년 된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는 글도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수백 그루다. 그래도 아름다운 동백숲으로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되었다.
동백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선운산의 동백은 우리나라에서 피는 동백꽃 가운데 가장 늦게 피어서 춘백이다. 이곳 동백은 3월말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쯤 절정을 이룬다. 서정주는 이곳 선운사 동백꽃 시를 남겼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1968년, 시 ‘선운사 동구’) 송창식은 이렇게 노래했다.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1986년 노래 ‘선운사’)
▲가을 애기단풍
가을이 되면 선운산의 단풍도 유명하다. 일주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단풍 물결이 넘실대기 시작한다. 선운사를 지나 도솔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기암과 단풍이 어우러진 풍광은 선운사에서 한 번쯤은 봐야 할 가을 볼거리들이다. 200∼300년씩 묵은 단풍고목의 잎이 계곡을 덮은 채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광경은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진경(珍景)이다. 가을이면 도솔계곡 양옆으로 은행나무와 버드나무 등 여러 수종들이 저마다 노랗고 빨간 옷으로 갈아입지만 단풍나무가 압도적으로 많아 다른 수종들의 기세를 꺾는다. 굵은 노거수들이 절정의 단풍을 펼쳐내면 도솔천 계곡물이 이를 그대로 비쳐낸다. 특히 선운사 앞 극락교 주변의 도솔계곡 물 위로 흐드러진 단풍나무의 모습이 비칠 때는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와 그 모습을 담아간다.
이곳 단풍나무가 유명한 것은 애기단풍 때문이다. 애기단풍은 중국 동북부와 전국에 분포하는 당단풍나무와 달리 잎의 크기가 작고, 잎의 열편이 5∼7갈래로 갈라져 있다. 당단풍은 잎이 크고, 열편이 9∼11갈래다. 잎의 길이는 보통 단풍의 절반인 3∼4㎝ 이하다. 애기단풍은 작고 무성한 잎이 빨간색부터 초록빛까지 다양하고도 선명한 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선운사 경내 배롱나무
선운사 천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배롱나무가 있다. 배롱나무는 7월에 꽃이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약 100일 동안 아름다운 자태를 이어간다고 해서 백일홍이다. 식물 백일홍과 구별해 ‘목백일홍(木百日紅)’ 또는 배롱나무로 불린다. 배롱나무는 나무껍질이 얇고 자라면 자랄수록 자꾸 벗겨져 매끄럽다. 그런 나무를 만지면 간지럼을 탈 것 같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긴 모습처럼 보여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본래 배롱나무 꽃은 자줏빛을 띤다. 지금은 계속 개량을 해서 흰 꽃을 피우는 흰 배롱나무도 있고, 분홍색 배롱나무도 조경수로 많이 심고 있다. 그런데 배롱나무는 무궁화처럼 한 꽃이 100일 동안 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 피고 지고 하루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추위에 약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해 남부지역에서 많이 자란다.
서원이나 종택의 사당 앞에도 배롱나무 고목이 많다. 대표적인 나무가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다. 여름이면 사당 주변을 붉은 꽃 천지로 만든다. 최근 보물로 지정된 대구 달성 하목정의 배롱나무도 유명하다. 전남 함평 백야산에 있는 함평이씨 선산의 묘소 제사를 위한 재실인 영사재(永思齋) 앞의 배롱나무 고목도 유명하다. 수령이 500년이 넘었다. 배롱나무 풍광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 명소가 담양 명옥헌이다. 배롱나무를 위주로 조성한 정원인 이곳을 그 꽃이 만발했을 때 찾으면 황홀한 풍광이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명옥헌 원림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된 배롱나무 30여 그루가 있다.
오래된 산사 대부분에는 배롱나무 고목들이 자라고 있다. 출가 수행자들이 껍질을 수시로 벗는 배롱나무처럼 세속적 욕망과 번뇌를 벗어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의미에서 경계의 방편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를 포함해 밀양 표충사, 순천 송광사, 승주 선암사, 김제 금산사, 김천 직지사, 양산 통도사, 구례 화엄사, 하동 쌍계사, 장성 백양사, 서산 개심사, 계룡산 신원사 등의 사찰을 한여름에 찾으면 붉은 꽃을 피운 수백 년 된 배롱나무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산사 배롱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영동 반야사의 배롱나무 두 그루다. 500년이 넘었다. 극락전 앞에 두 그루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이 배롱나무는 오래전부터 사진작가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여름이 되면 해마다 수많은 전화가 사찰로 걸려온다.
▲장사송(長沙松)
도솔암에 다다르기 전 오른쪽에 하늘로 길고 곧게 뻗어있는 소나무가 있다. 수령이 600년이나 되는 장사송(長沙松)이다.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높이는 23m에 가슴높이 둘레는 3m다. 동서 남북으로 퍼진 가지 길이는 17m다. 소나무 치고는 오래 살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운사와 암자들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스님과 의운수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단스님이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禪)의 경지를 얻는다”고 해 절 이름을 선운사로 지었다고 한다. 사적기에는 한때 89암자에 3,000 승려가 상주한 국내 제일 대찰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의 부침에 따라 모두 사라지고 본당을 비롯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 4곳의 산내 암자들만 남아 있다. 다행히 수천 년 세월의 영화가 문화재로 남아있다. 보물로 지정된 선운사 대웅보전과 만세루, 금동보살좌상,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참당암 대웅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지방유형문화재가 즐비하다.
선운사에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선운사의 현관문 격인 사천왕문의 현판이다. 힘차면서 담박한 필치로 쓴 ‘사천왕문’이란 빛바랜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 명필로 손꼽히는 원교 이광사(1705년~ 1777년)의 솜씨다. 그의 글씨는 같은 시기의 인물인 추사 김정희와 자주 비견된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만세루가 정면에서 보인다. 만세루는 우리나라 누각 중에서 가장 큰 정면 9칸, 옆면 2칸 규모다. 보통 사찰의 루(樓)는 2층 모정(짚이나 새 따위로 지붕을 인 정자) 형식으로 낮게 지어져 있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서 예를 갖추어야 하는데, 선운사는 평지라 굳이 2층을 만들 필요가 없어 단층으로 지었다. 만세루가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정유재란 이후 화재로 소실된 대양루를 영조 28년(1752년)에 다시 지으면서, 올곧지 않은 나무를 버리지 않고 조각보를 잇듯이 정교하게 짜맞춰 완성했기 때문이다.
선운사 산내 암자 중 참당암은 지금은 사격(寺格)이 위축되었지만 본래는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리었던 거찰이었다.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도솔(兜率)’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륵신앙의 배경 하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에 ‘도솔산 중사(兜率山仲寺)’라는 명문을 통해 한때는 절이름이 중사였음을 알 수 있다. 도솔암 바로 위에 마애여래좌상과 내원궁이 있다.
내원궁은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 암벽의 정상부에 세워져 있다. 마애불 옆에 놓인 급경사 데크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내원궁은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을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의 부탁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모든 중생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도솔암은 마애불과 내원궁 아래에 있다. 도솔계곡의 뜻이 미륵이 산다는 이상세계이므로 미륵보살을 모신 암자임을 알 수 있다. 선운사 산내 암자 중에는 석상암과 동운암도 있으나 딱히 눈길을 끌만한 요소는 없다.
■부도전과 백파율사비… 추사가 글을 짓고 글씨 써
부도전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부도를 모아 놓은 곳이다. 선운사 부도전은 일주문을 지나 우측 안쪽에 있다. 이곳 부도전을 일부러 찾아야 하는 이유는 조선 최고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도전 앞줄 중앙의 백파율사비에 추사의 글씨가 새겨있다. 백파선사(1767~1852)는 12세에 출가한 선운사에서 불법을 닦았던 고승이다. 백파가 입적한지 3년 뒤인 1855년, 생전에 백파율사와 어울린 추사에게 제자들이 부탁하자 추사가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쓴 비문이 백파율사비다.
2.36m 높이의 비문 앞면 글씨는 해서체로, 뒷면의 작고 빽빽한 글씨는 행서체로 썼다. 비문은 백파가 입적한 순창 영구산 구암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3년이 지난 1858년에 백파가 출가한 선운사로 보내졌다. 비문은 현재 자리에서 보관되다가 훼손되는 것을 막고자 2006년 선운사 성보박물관으로 이전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마애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은 도솔암 서편의 거대 암벽(30m)에 새겨진 불상으로 신체높이는 15.7m이고 무릎너비는 8.5m다.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다. 고려시대 제작으로 추정하지만 백제 위덕왕, 신라말기, 조선시대 등 제작시기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기도 효험이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보물로 지정되었다. 마애불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뚤려 있는데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있는 것도 있다. 이 구멍들은 마애불의 장엄함을 위해 설치한 닫집(법당의 부처를 모신 자리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 이 있었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