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고창 선운산] 높이는 낮아도 수려한 산세와 거대 암봉 덕분에 ‘100대 명산’ 존재감 뽐내는 명산… 여러 코스 중 단언컨대 이 글에서 소개하는 산행길이 최고이지요

↑ 천마봉에서 내려다본 도솔암과 도솔계곡. 오른쪽 소나무 위 우뚝한 바위가 투구바위다.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14㎞(산행길 8㎞, 평지길 6㎞)에 8시간

☞ 매표소 ~ 사자바위 ~ 쥐바위 ~ 천마봉 ~ 도솔암 ~ 매표소(원점회귀)

 

전북 고창의 선운산에 처음 오른 것은 신혼 시절이던 1990년 가을이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2021년 11월 14일 그때의 아내를 모시고 다시 선운산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31년 전 산행은 선운사를 둘러보고 주변의 야트막한 산에 오른 것 같은데 장소가 어딘지는 기억에 없다. 그 후에도 선운사는 두어 차례 다녀왔으나 제대로 선운산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산행은 선운산을 충분히 감상하겠다는 생각으로 도솔계곡(선운사 계곡)을 가운데 끼고 주변 봉우리를 타원형으로 한 바퀴 도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얼추 계산해보니 산행거리 8㎞에 산책거리 6㎞를 합쳐 대략 14㎞ 정도다. 거리가 길긴 해도 산책길 같은 능선을 걷는 것이어서 그다지 힘들지 않다. 5~6시간 정도로 잡았는데 점심·휴식을 하고 여유있게 산행을 하다보니 8시간 걸렸다.

   

■선운산은

선운산은 일곱 난장이 같은 산이다. 최고봉인 경수산의 높이가 444m에 불과하고, 그 외 10여개 봉우리도 300m 정도 높이에서 서로 키재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산이라면 모름지기 있어야 할 정상 개념이 없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00대 명산의 존재감을 뽐내는 것은 높이로만 계량할 수 없는 수려한 산세와 거대 암봉 덕분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명승지로 지정된 도솔계곡이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선운산이 일곱 난장이라면 천마봉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솔암, 내원궁, 마애불 등 불교 유적은 백설공주같은 존재들이다.

쥐바위에서 바라본 천마봉(가운데). 그 뒤 왼쪽이 견치산(개이빨산)이고, 오른쪽이 천왕봉과 수리봉(도솔산)이다, 저 멀리 오른쪽 끝은 경수산이다.

 

선운산의 최고봉은 경수산이지만 산꾼들이 정상으로 치는 봉우리는 해발 336m의 수리봉(도솔산)이다. 가장 매력적이고 인기있는 봉우리는 선운산의 핵심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천마봉(248m)이다. 그 외 봉우리들은 고만고만하다. 여기에 용문굴바위, 병풍바위, 사자바위 등 기암괴봉이 능선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이들 바위들을 오르거나 감상하며 산행하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선운산의 또 다른 매력은 계절마다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 꽃과 나무들이다. 3월이면 선운사 대웅전 뒤에 피는 수 백 그루의 ‘동백나무 숲’과 4월의 벚꽃, 9월 중순 시작되는 꽃무릇 군락, 11월 초 온 산을 뒤덮는 애기손 단풍에 겨울의 산사 설경이 더해지니 시각적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주요 산행 코스

선운산은 정상다운 정상이 딱히 없고 10여개 봉우리 높이도 고만고만해 코스를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10시간 정도 걸리는 산행에서 자신이 원하는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코스는 산책과 등산을 겸한 3시간 코스다. 거리는 짧지만 도솔계곡의 멋진 풍광과 선운산 기암의 조망을 한껏 누릴 수 있어 인기가 많다. 도솔계곡을 끼고 선운사~도솔암까지 산책하듯 걸어간 뒤 그곳에서 천마봉으로 올라가 낙조대를 거쳐 용문굴로 내려와 내원궁과 마애불상을 둘러본 뒤 선운사로 하산한다. 천마봉 오름길이 다소 경사가 있긴 하나 높지 않아 전체적으로 등산 코스라기보다는 답사 코스로 적합하다. 적당한 산행·산책을 즐길 수 있는 코스 중에는 능선을 마주보며 걷는 5~6시간 코스도 있다. 초입의 도솔계곡을 지나 도솔제(저수지)로 올라가 투구바위~청룡산~낙조대~천마봉을 거쳐 도솔암으로 하산한 뒤 도솔계곡을 따라 매표소로 원점회귀하는 타원형 코스다.

가장 긴 코스는 주차장 우측의 경수산으로 올라가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타고 천상봉~청룡산까지 갔다가 동쪽의 희여재~비학산을 거쳐 북쪽의 형제봉에서 공원관리사무소로 내려오는 타원형의 원점회귀 종주산행이다. 지나는 산과 봉우리가 15개 정도나 되어 10시간 이상 잡아야 하지만 산이든 봉우리이든 300m급이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다.

선운산 지도

 

전체 코스를 쉽게 설명하면, 선운산에는 서쪽부터 동쪽까지 3개 능선이 있는데 서쪽 능선은 도솔산(수리봉)~천상봉~청룡산 능선이고 중앙 능선은 쥐바위~사자바위~투구바위 능선이다. 동쪽 능선은 희여재~비학산~안장바위~구황봉~형제봉으로 이어진다. 서쪽 능선과 중앙 능선 사이에는 도솔계곡이 흐르고 있고, 중앙 능선과 동쪽 능선 사이에는 희여계곡과 도솔제(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다. 어떤 코스를 정하든 거리만 길 뿐 난도는 높은 편이 아니어서 거리에 비례해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체력적으로 버겁지는 않다.

 

■산행 시작

우리 산행은 5~6시간 코스로 진행했다. 매표소 → 선운사 일주문 → 도솔제(저수지) → 투구바위 → 사자바위 → 국기봉 → 쥐바위 → 청룡산 → 배맨바위 → 낙조대 → 천마봉 → 용문굴 → 마애불상 → 내원궁 → 도솔암 → 매표소다. 이 길의 매력은 긴 타원형의 능선을 걸으며 거대 암릉이나 암벽을 보며 걷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시간과 거리를 감안했을 때 선운산이 품고 있는 여러 매력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최고 산행길이다.

 

▲매표소~도솔제(저수지)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도솔계곡을 끼고 걷는데 가을 분위기가 물씬하다. 온통 만산홍엽이지만 붉고 선명한 내장산 단풍과 달리 그윽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선운산 가을을 대표하는 것은 애기손 단풍이다. 이름 그대로 애기 손처럼 작고 앙증맞은데다 그렇게 고울 수 없다. 10월 말에서 11월 중 선운산을 찾으면 절정의 애기단풍을 만날 수 있다.

계곡 양쪽에 펼쳐진 초지(草地)에는 군락으로 자라는 꽃무릇(석산) 잎이 생기 넘치는 진초록을 뽐내고 있다. 땅의 진초록과 단풍나무의 빨강 노랑이 보여주는 명료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우리의 겨울은 초록이 사라져 황량한데 선운산 만큼은 꽃무릇 덕분에 생동감이 있다. 꽃무릇은 매년 9월 중순경 붉은 꽃 군락을 이룬다. 주로 초입의 도솔계곡, 선운사, 도솔암 등에 이르는 탐방로 주변에 많이 자생한다. 꽃무릇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글 맨 아래에 소개한다.

꽃무릇과 단풍

 

매표소를 지나면 선운사 일주문이고 그 앞으로 도솔계곡이 흐른다. 계곡 오른쪽이 선운사, 왼쪽이 도솔제(저수지) 방향이다. 우리는 도솔제를 지나야 하므로 왼쪽길이다. 애기손 단풍은 이곳에서도 계속 우리를 따라와 보이는 것마다 노랑 빨강의 단풍 세상이다. 길은 전체적으로 평탄한 숲길이고 고즈넉하다. 이곳의 도솔계곡 일원이 국가문화재 명승 제54호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국가가 이곳의 풍광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도솔암 방향이고 왼쪽은 도솔제 방향이다. 그런데 갈림길 부근에 도솔제를 가리키는 안내목이나 안내판이 없어 불편하다. 부근 다리에 지도가 있으나 지형이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는 바로 이해할 수 없다. 갈림길 왼쪽에 자리잡은 음식과 차를 파는 도솔제쉼터를 기점으로 삼아 그 앞 쪽으로 걸어올라가야 도솔제가 나온다.

도솔제

 

▲도솔제~투구바위~사자바위

도솔제는 계곡물을 둑으로 막아놓은 저수지다. 경북 봉화의 주산지보다는 규모가 훨씬 크지만 분위기는 살짝 비슷하다. 둑을 지나 저수지 옆길로 걸어가니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 초반 1㎞ 정도는 오르막이지만 송글송글 땀이 맺힐 뿐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오르막 끝은 투구바위다. 그곳 안내목에 따르면 아래 선운사는 1.7㎞, 위 투구바위는 0.72㎞ 거리다.

사전 정보 없이 투구바위 아래에 올랐는데 아이부터 어른까지 여러 가족이 모여 있어 의아했다. 알고보니 클라이밍을 즐기는 가족들이고 투구바위는 클라이머들에게는 소문난 자연 암장(巖場)이다. 암장은 벽면에 구멍을 뚫거나 인공 손잡이를 붙여서 인공 암벽 시설을 갖춘 곳을 말한다. 주말이면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모인 클라이머들이 이곳에서 각자 기량을 겨루며 즐거워한다고 하니 참으로 건강한 가족들이다. 투구바위에 대해서는 이 글 맨 아래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투구바위.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

 

투구바위에서 사자바위로 가려면 잠깐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한다. 투구바위 아래 안내목에 따르면, 도솔제 → 0.82㎞, 사자바위 → 1.75㎞다. 사자바위 방향 능선에 오르니 비로소 조망이 터지는 편안한 산책길이다. 오른쪽 건너편 능선을 바라보면 천왕봉~천마봉~배맨바위~청룡산 능선이 길게 이어지고 왼쪽 능선을 바라보면 안장바위~비학산~희여재 일대 능선이 길게 펼쳐있다. 조금전 올라왔던 도솔제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압권은 천마봉 암벽이다. 천마봉 아래 도솔암이 거대 암반 속에 둥지를 튼 것처럼 보인다. 도솔암 뒤는 불쑥불쑥 솟아오른 고만고만한 암반들이 병풍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사자바위 아래 안내목에 쥐바위 → 1.3㎞, 투구바위 → 2.75㎞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금전 투구바위 안내목에는 사자바위까지 1.75㎞라고 되어있는데 사자바위에서는 투구바위까지 2.75㎞란다. 우리나라 산은 이렇게 거리표시가 엉망인 곳이 많다. 아니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이렇다.

사자바위는 거대 암봉이어서 사자바위 머리에 오르려면 암벽을 타야 한다. 위를 쳐다보니 20m 정도 높이의 급경사 암벽이다. 다행히 암벽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발판돌(홀드)이 촘촘히 박혀있고 밧줄도 매달려 있다. 평소 암벽 오르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내가 끙끙대면서도 올라간 것으로 보아 위험하진 않다. 사실 사자바위에서 머리털이 쭈뼛서는 곳은 따로 있다. 사자바위 머리에서 건너편으로 이어진 20m 정도 길이의 암릉 구간이다. 폭이 좁고 양 옆이 낭떠러지여서 아찔하고 오금이 저린다. 절로 자세가 낮춰지고 다리엔 힘이 들어간다. 사자바위 지나니 이번에는 투구바위가 1.0㎞란다. 이런 엉터리가 없다. 안내목에 따르면 청룡산은 2.3㎞이고 쥐바위는 1.3㎞라는데 미덥지 않다.

사자바위 오르는 아내(왼쪽)와 벼랑 위 암릉 구간

 

▲사자바위~쥐바위

사자바위부터 쥐바위까지 다시 아늑하고 평탄한 숲길이다. 그 길을 따라 1㎞쯤 걸으면 국기봉(314m) 갈림길에 닿는다. 국기봉은 표지판으로만 봉우리일 뿐 모양새는 봉우리가 아니다. 특색도 없다. 그래도 국기봉 이름을 달아준 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국기봉에서 직진하면 쥐바위이고 왼쪽으로 가면 1.3㎞ 떨어진 희여재이고 더 가면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어서 편의상 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기봉에서 쥐바위로 가려면 한참을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쥐바위 또한 훌륭한 조망터다. 사실 우리가 지나온 능선은 어느 곳 하나 조망터가 아닌 곳이 없다. 우리 산행길은 계곡을 가운데 두고 ‘ㄷ’자 혹은 ‘U’자 형태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쪽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능선이 우리가 지나갈 길이고 맞은편에서 이쪽 능선을 바라보면 걸어온 길이다. 우리의 진행방향에서 쥐바위 꼭대기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꼭대기에서 청룡산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10m 정도 길이의 급경사 암벽이다. 밧줄을 잡아야 하지만 고난도는 아니다. 간간이 이렇게 스릴 넘치는 ‘이벤트’를 만나니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쥐바위에서 내려가 뒤돌아보니 우뚝한 암봉이다. 그런데 왜 쥐바위일까. 쥐바위 남단 약 30m 거리에 마치 쥐가 먹을 것을 앞발로 움켜쥐고 엎드려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쥐바위 아래에 ‘쥐바위’라 쓰인 푯말이 있는데 이 푯말에서 왼쪽 아래 급경사로 약 30m 내려서면 M자형을 한 10m 높이의 기암이 쥐바위다. 우리는 사전 정보가 없어 지나쳤다.

쥐바위(왼쪽)와 배맨바위

 

▲청룡산~배맨바위~병풍바위

쥐바위에서 청룡산(314m)으로 가기 전 무명봉을 지난다. 남쪽의 넓은 평야를 내려다보며 쉴 수 있는 바위가 있지만 이미 다른 부부가 선점한 상태여서 입맛만 다시고 지나쳤다. 청룡산은 선운산에서 드물게 ‘산(山)’으로 불리는데도 조망이 없다. 안내판을 보니 쥐바위 → 1㎞, 배맨바위 → 0.5㎞, 해리하련 → 1.5㎞라고 되어 있다. 해리하련이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청룡산 바로 아래 마을인 고창군 해리면 하련리를 축약한 지명이다. 쉽게 풀어쓰면 좋을 것을.

청룡산에서 북쪽 능선을 바라보니 산행 내내 조그만 점처럼 보이던 배멘바위가 제법 우뚝한 암봉으로 솟아 있다. 배맨바위 뜻은 무얼까. 나는 산행기를 쓸 때 근거 없는 ‘전설따라 삼천리’ 식의 설명은 소개하지 않는데 배맨바위는 약간 흥미가 있어 소개한다. 배맨바위는 남쪽 멀리에서 보면 아기를 업고 있는 사람 모양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아주아주 오래 전, 산 정상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이 바위에 매달았다는 전설에서 ‘배맨마위’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높은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주변 계곡에서 조개껍질이 발견되고 바위가 퇴적암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오래전 이곳에서도 지각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바위이기도 하다.

배맨바위에서 낙조대까지는 1.4㎞다. 낙조대 가기 전 병풍바위 위를 지난다. 건너편 능선에선 병풍바위 규모가 뚜렷하게 보였지만 이곳 능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나는 나를 모르지만 남들은 나를 알기 때문이다. 병풍바위 끝에 아래로 내려가는 긴 철계단이 놓여있다. 철계단 중간에서 바라보니 선운산의 최고 조망터인 낙조대~천마봉 구간이 하나로 이어진 거대 암릉임을 실감하게 된다. 천마봉은 마치 사자가 웅크린 채 도솔계곡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낙조대~천마봉~용문굴

낙조대는 높이가 300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날이 좋으면 서해 칠산바다, 곰소만, 도천저수지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녁 낙조 조망이 최고라는데 대낮 조망은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다. 낙조대에서 오른쪽으로 200m 쯤 안쪽으로 들어가면 천마봉(284m)이다. 천마봉은 선운산의 핵심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 조망터다. 선운산이 왜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지 이유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다.

낙조대

 

천마봉에 서면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도솔암과 그 뒤에 들쑥날쑥 자리잡은 여러 암반들, 그리고 도솔계곡의 풍광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우리가 지나온 사자바위~쥐바위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고 멀리 투구바위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자바위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만 천마봉에서 바라본 모습은 흡사 피라미드 같다. 천마봉에서 낙조대 방향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면 도솔암과 용문굴로 내려갈 수 있다, 도솔암까지는 0.47㎞이고 용문굴까지는 0.57㎞다. 용문굴에서도 도솔암으로 내려갈 수 있다. 낙조대에서 용문굴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도솔암으로 내려갈 경우 급격한 철계단을 20분 정도 내려가면 된다.

우리는 용문굴을 거쳐 도솔암으로 내려갔다. 1㎞ 정도 거리다. 용문굴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굴인데 모양새는 거대 바위 아래를 지나는 통로 형태다. 상상한 것보다 규모가 커 볼만하다. 과거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 엄마가 죽음을 맞는 순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금이 엄마의 돌무덤을 관광상품으로 쌓아놓았다. 낙조대도 ‘대장금’에서 최상궁이 자살한 곳이다. 용문굴을 지나 15분 정도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마애불과 도솔암에 닿는다. 낙조대에서 1㎞ 거리의 소리재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만나는 천상봉에서도 용문굴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이 코스는 용문굴과 도솔암 사이 바위협곡을 지나는데 이 협곡이 선운산에서는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한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 글 독자라면 한번쯤 들러볼 것을 권한다. 나 또한 다녀올 계획이다.

용문굴

 

▲도솔암, 마애여래좌상, 내원궁

낙조대에서 바로 내려가든, 용문굴을 거쳐 내려가든 도솔암으로 가기 전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도솔암 바로 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과 내원궁이다. 마래여래좌상은 높이 30m에 이르는 거대 암벽에 새겨진 불상으로 보물 제1200호다. 15.7m의 신체 높이와 8.5m 무릎너비를 가진 거대한 마애불이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다. 고려시대 제작으로 추정하지만 신라말기, 조선시대 등 의견이 분분하다. 기도 효험이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래여래좌상

 

내원궁은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 암벽의 정상부에 세워져 있다. 마애불 옆에 놓인 데크 계단을 타고 바위 위까지 올라가야 한다. 내원궁은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을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의 부탁을 받아 그가 죽은 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모든 중생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도솔암은 마애불과 내원궁 아래에 있다. 도솔계곡의 뜻이 미륵이 산다는 이상세계이므로 미륵보살을 모신 암자임을 알 수 있다. 도솔암에서 가파른 철계단을 30분 남짓 오르면 천마봉이다. 천마봉까지 0.49㎞, 용문굴까지 0.48㎞ 거리다.

도솔암부터 선운사까지는 도솔계곡을 따라 걷는 산책길이다. 중간에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에서 유래한 600년 수령의 장사송(천연기념물 354호)이 늘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높이는 23m, 가슴둘레는 3m다. 조금 더 내려가면 신라 진흥왕이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입산해 수도했다는 천연동굴인 진흥굴이 있다. 도솔계곡을 따라 조금더 내려가니 오전에 지나쳤던 천년고찰 선운사다.

장사송(왼쪽)과 진흥굴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

 

▲선운사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당을 비롯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 4곳의 말사들이 남아 있다. 선운사 경내에 모셔져 있는 대웅보전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중요문화재와 지방유형문화재가 즐비하다. 천연기념물도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84호),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45호), 송악(천연기념물 제 367호) 등 3점이다.

선운사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선운사의 현관문 격인 사천왕문의 현판이다. 힘차면서 담박한 필치로 쓴 ‘사천왕문’이란 빛바랜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 명필로 손꼽히는 원교 이광사의 솜씨다. 그의 글씨는 같은 시기의 인물인 추사 김정희와 자주 비견된다. 마침 추사의 글씨도 선운사 부도밭에 있다. 앞줄의 부도 중앙에 선운사에서 불법을 닦았던 고승 백파 선사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거기에 적힌 푸른 날이 선 듯한 글씨가 바로 추사 김정희 솜씨다. 앞면 글씨는 해서체로, 뒷면의 작고 빽빽한 글씨는 행서체로 썼다. 사실 이 비석은 실제보다 조금 작게 만든 복제품이다. 본래 부도비는 지난 2006년에 선운사 성보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선운사

 

▲꽃무릇

꽃무릇은 늦가을에 꽃이 지면 진초록의 잎이 나왔다가 다음해 5월 사라진다. 덕분에 선운산은 겨울에도 드문드문 초록을 유지하고 있다. 선운산 산책길 안내판에 ‘잎이 진 후에 꽃이 피고 꽃이 진 후에 잎이 나기 때문에 입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다는 애틋한 연모의 정을 갖고 있어 일명 상사화’라고 되어 있는데 설명 대부분은 맞지만 상사화는 아니다. 모양이 비슷한 상사화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사화 역시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는 꽃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꽃무릇과 유사하긴 해도 엄연히 다른 꽃이다. 상사화는 봄에 잎만 나와 6~7월쯤 마른 다음 8월쯤 꽃대가 올라와 연분홍색 꽃이 핀다. 이와 달리 꽃무릇은 상사화가 질 무렵, 그러니까 초가을에 진한 붉은색으로 꽃을 피운 뒤 꽃이 지면 새잎이 돋아나 겨울을 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꽃무릇이든 상사화든 사람이 알뿌리를 분리해줘야 잎이 나고 꽃이 핀다는 것이다. 중국으로 추정되는 원산지에서는 스스로 잎이 나고 꽃을 피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스스로 결실을 맺지 못해 사람이 알뿌리를 분리해줘야 한다.

꽃이 만개한 꽃무릇 (출처 고창군청)

 

▲투구바위

투구바위는 높이 15m, 폭 50여 m의 바위 2개가 양쪽으로 마주보며 서 있는 형태다. 양쪽 바위가 똑같이 오버행(암벽의 일부가 튀어나와 머리 위를 덮고 있는 듯한 바위 형태)이어서 하늘이 보이는 바위터널 같은 모양이다. 마주보는 바위와 바위 사이 공간이 투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투구바위다. 바위를 올려다보니 곳곳엔 난이도와 코스 이름을 적은 명찰이 붙어 있다. 루트 길이는 7~15m이고 난이도는 다양하다. 투구바위 아래에도 암장으로 유명한 속살바위가 있는데 투구바위 보다는 저난도란다. 그래서 선운산을 찾는 클라이머들은 속살바위를 거친 다음 투구바위에 도전한다. 속살바위는 여인의 속살같이 부드럽고 흰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의 고수 클라이머들이 이곳 투구바위로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양한 홀드(바위 위에 오목하거나 볼록하게 튀어나온 지점으로 손잡이나 발디딤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바위의 요철),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석회암의 매력, 중급에서 고난도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루트들, 전체적인 오버행,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어프로치,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나무그늘이 있는 시원한 암장 등 매력 포인트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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