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육군사관학교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빛과 그림자

↑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하는 모습 (출처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by 김지지

 

국군 창설 후 첫 장교 배출한 곳은 군사영어학교

대한민국 국군은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제28호에 따라 미 군정청 내에 설치된 ‘국방사령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방사령부는 군 조직을 통괄하는 군사국과 경찰 조직을 관할하는 경무국을 두 축으로 삼아 해방공간의 무질서를 바로잡았다. 미 군정은 국방사령부 설치 후 바로 군대를 창설하려 했으나 한·미 간 언어 소통이 선결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45년 12월 5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신학교 자리에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했다.

군사영어학교 건물

 

군사영어학교는 당초 설립 목적이 기초적인 군사영어를 가르쳐 미군 통역관을 양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출신을 적절히 배합하려 했다. 그러나 광복군 출신들은 “우리들이 광복군의 법통을 이어받아 장차 국군의 모체가 되어야 한다”며 입교를 거부했다. 60명으로 시작한 학생은 한때 200명까지 늘어났으나 졸업 후의 진로가 분명치 않아 자퇴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결국 1946년 4월 30일 폐교될 때까지 순차적으로 109명만이 졸업했다. 초기 졸업생 가운데 21명은 40여일 간의 군사교육을 받고 1946년 1월 15일 대한민국 국군 첫 장교로 부임했다. 이형근, 채병덕, 유재흥, 장석윤, 정일권이 군번 1번부터 5번까지를 부여받은 영광의 주인공들이었다. 뒤이어 며칠 간격으로 109명 모두 임관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자 중 78명이 훗날 별을 달고 그 가운데 13명이 참모총장, 7명이 합참의장에 오를 정도로 군사영어학교는 창군기에 중추 역할을 했다. 군사영어학교의 폐교로 미처 졸업하지 못한 60명은 1946년 5월 1일 창설된 ‘국방경비대 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로 편입되어 임관했다.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는 ‘남조선 국방경비대’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된 ‘남조선 국방경비대’는 1946년 1월 15일 창설되었다. 이날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 태릉(지금의 육사 자리)에 위치한 구 일본군 특별지원병훈련소에서 제1연대 제1대대 A중대가 편성됨으로써 1907년 8월 대한제국군이 해산된 후 39년만에 우리 민족의 정식 군대가 탄생했다. 초대 총사령관으로는 존 마셜 미군 중령이 임명되었다. 국방경비대는 주로 군사영어학교 출신들로 장교를 채운 뒤 병사 225명을 선발하겠다고 공고했다. 그러자 1,000여명이 지원해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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