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미니스커트의 아이콘’ 메리 퀀트의 죽음을 계기로 살펴본 미니스커트의 등장과 유행

↑ 1960년대 미니스커트 모습

 

by 김지지

 

‘미니스커트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2023년 4월 13일 영면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미니스커트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적으로 유행했는지를 살펴본다.

 

미니스커트 진원지는 퀀트와 쿠레주

유사 이래 여성의 발목을 덮었던 치마 밑단이 정강이 중간까지 오른 것은 1920년대 들어서였다. 그래도 여성들이 무릎을 드러내는 치마를 입으려면 수십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까지 무릎을 가리지 않은 여성들은 정숙하지 않은 여인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무릎이 보일 정도의 짧은 치마가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이었다. 1956년 개봉한 영화 ‘금단의 행성’에서 여배우가 짧은 치마를 입고나온 것이 미니스커트의 첫 사례로 꼽힌다. 메리 퀀트(1930~2023)라는 20대 여성이 영국 런던에 부티크를 열어 장차 ‘미니스커트의 아이콘’이 될 여정을 시작한 것도 1950년대 중반이었다.

퀀트는 영국 런던의 교사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침대보를 잘라 옷을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있었고 “물려받은 옷은 나답지 않다”며 거부할 정도로 개성이 넘쳤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려 했으나 “패션의 미래가 깜깜하다”는 부모의 반대에 밀려 골드스미스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퀀트는 예술학교 졸업 후 취업한 모자가게에서 모자를 팔거나 만들었다. 그가 만든 모자는 다음날이면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높았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물려받은 유산으로 구입한 런던 첼시 지역의 킹스로드 부근 3층 건물 1층에 ‘바자(Bazaar)’라는 이름의 부티크를 1955년 오픈했다. 2년 후 결혼하게 될 남자친구는 지하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오픈 당시의 ‘바자’는 직접 옷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아니라 도매상에서 옷을 사다가 파는 소매가게였다. 그런데도 퀀트의 패션 감각과 기발한 쇼윈도 디스플레이 덕분에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반대로 중절모를 쓴 도시의 신사들은 쇼윈도에 걸린 옷들이 부도덕하다거나 역겹다며 소란을 피웠다. 더 큰 문제는 퀀트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의류 제조업자들이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퀀트는 감각적으로 튀는 옷을 원했지만 그런 옷을 만드는 곳이 없었다.

퀀트가 런던 킹스로드에서 오픈한 옷가게 ‘바자’

 

그 무렵, 패션은 프랑스 파리의 고급 맞춤복 디자이너가 지배했다. 그들이 만든 비싼 옷들은 그 해 세계 패션의 트랜드가 되었고 젊은 여성들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도 트랜드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퀀트는 값싸고 활동하기 편한 원단으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으로 기성 패션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퀀트가 표방한 것은 ‘편안함’과 ‘자유로움’이었다. 젊은 여성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밝고 개성적인 옷과 그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을 추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들이 바자의 쇼윈도에 걸리면 젊은 여성들이 바로 달려들어 구매했다. 퀀트의 스타일에 반해버린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퀀트는 청소년 패션 모드의 중요한 인물로 부상했다. 패션 관련 잡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외국에서도 ‘바자’의 옷들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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