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 흑인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입단

마리안 앤더슨은 미국의 가난한 흑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주로 성가대에서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노래만큼은 최고의 재능을 보였다. 23세 때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관한 콩쿠르에서 3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뉴욕필과 협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그의 진가는 미국보다 유럽에서 먼저 빛을 발했다. 1930년 시작한 유럽순회 공연에 유럽인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풍부한 음량과 순수한 음색에 반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그에게 가곡 ‘고독’을 헌정했고,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100년에 한 명 나오는 목소리”라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내 분위기는 유럽과 사뭇 달랐다. 1939년 워싱턴 헌법기념홀에서 음악회를 가지려 했으나 일부 보수여성단체의 반대로 공연이 취소됐다. 피부색이 문제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노어 루스벨트를 포함한 시민들은 그 결정에 항의하며 링컨기념관 앞 야외에서 연주회를 열도록 주선했다. 공연은 7만5000명의 관중으로 대성황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를 초청, 흑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공연을 갖도록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앤더슨은 흑인 민권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1955년 10월 7일에는 53세의 뒤늦은 나이에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입단, 오페라 무대에 서기도 했다. 1965년 4월 카네기홀에서 은퇴 공연을 할 때까지 50여 차례 공연을 해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뛰어난 여성 성악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도 두 차례(1952년, 1957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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