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이탈리아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1182년 이탈리아 옴브리아주의 고대도시 아시시. 예수처럼 말구유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상인을 아버지로 둔 덕에 젊어서는 쾌락에 빠졌으나 곧 좌절과 고통을 겪어야했다. 이웃 도시와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히고 병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27세 때인 어느날, “무너져가는 나의 집들을 다시 세우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곧 집에서 나오고 재산과 명예를 버렸다. ‘성(聖) 프란치스코’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이때부터 갈색의 농민 복장에 ‘청빈·순결·순종’을 상징하는 세 겹의 밧줄을 허리에 매고 가난한 자, 병든 자와 하나가 됐다. 몇 명의 제자와는 수도회를 시작했다. ‘탁발(托鉢) 수도회’였다. 그 수가 3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자신은 무소유의 길을 걸었어도 물질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사회 속으로 파고들었다. 학문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아 많은 신학교수들을 배출했다.

1224년 9월 라 베르나산(山)에서 40일 간 금식할 때였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양팔을 벌린 채 십자가 모양을 한 예수와 마주친 순간, 그의 손과 발목, 옆구리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손과 발에 못자국이 생기는 신비 체험을 한 것이다. 이때 얻은 상처로 눈까지 멀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였지만 결국 1226년 10월 3일, 고향 아시시에서 눈을 감았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상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성인이었고, 중세 최고의 지성이었다. 시신은 그가 사망하고 2년 뒤 아시시에 짓기 시작한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1230년에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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