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목소리가 독일 바덴바덴의 IOC 총회장에 울려퍼졌다. 서울이 52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물리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순간, 유치단은 만세를 불렀고 세계인들은 이 극적인 반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됐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 올림픽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1979년 9월 결정했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타계로 무산될 뻔한 올림픽 유치 움직임이 되살아난 것은 2년 뒤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개최지 결정을 정확히 1개월 앞둔 1981년 8월 30일 최종적으로 올림픽 유치를 지시한 것이다. 설사 이 지시가 국민적지지 기반이 취약했던 5공 군사정권이 솟구치는 민주화 욕구를 스포츠로 돌리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이었다 해도 우리 민족에게는 환희의 시작이었다. 9월 20일 유치단이 바덴바덴에 도착했을 때 현지 분위기는 이미 나고야로 기울어 있었다. 북한의 방해도 성가셨지만 1년 전 모스크바 올림픽이 서방 국가들의 불참으로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 한반도의 남북분단은 최대약점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이미 한반도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다만 마지막 날까지 그걸 몰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