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美 대선 후보 케네디와 닉슨의 첫 TV토론

1960년 9월 26일. 미국 시카고 시간으로 밤 8시 반이 되자 사람들이 속속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미 역사상 최초로 열린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카고 CBS에서 열린 이날 토론은 미국의 3대 TV 방송과 라디오 전파를 타고 미 전역에 생중계됐다. 토론 주인공은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후보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였다. 사회자는 하워드 스미스였고 4명의 언론사 기자가 패널로 참가했다.

사람들은 닉슨의 승리를 낙관했다. 그는 8년 간 부통령 후보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데다 베테랑 정치인이었고 연설에 관한한 케네디보다 한 수 위였다. 그에 비하면 케네디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고 바람둥이 애송이였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시선은 케네디로 집중됐다. 겨우 40대 후반이면서도 늙고 초췌해 보이는 닉슨과 달리 케네디는 구릿빛 건강한 얼굴에 젊음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케네디는 화면에 뚜렷하게 부각되는 짙은 색 양복을 입고 시청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유권자들을 설득해 나간데 반해 닉슨은 옆 얼굴 만 드러낸 채 “나 역시(me too)”만을 연발하고 있었다.

이날 라디오 청취자는 나름대로의 논리로 토론을 끌고간 닉슨에게 후한 점수를 매겼지만 TV는 논리보다 감성과 이미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닉슨은 그걸 몰랐다. 결국 선거 전까지 워싱턴·뉴욕 등에서 열린 총 4회의 TV토론은 케네디를 위한 무대였다. 선거 후 CBS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의 57%가 토론회의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6% 즉 400만 명은 “토론회만으로 후보를 결정했다”고 답했고 그중 300만 명이 케네디를 지지했다. 케네디는 투표에서 11만여표를 앞섰다. TV라는 마술상자가 빚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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