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한 달 전 갔는데도 자꾸 어른거려 또 다시 찾아간 강원도 삼척·동해의 두타산(頭陀山)… ① 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

↑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관음암과 관음폭포

 

by 김지지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관음암~신선봉~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이 궁금하다면 클릭!!

☞ 두타산의 다른 코스(무릉계곡~베틀바위~두타산협곡 마천루~쌍폭·용추폭포~무릉계곡)가 궁금하다면 클릭!!

 

100대 명산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허투루 명산을 선정하지 않았다는 것에 공감한다. 물론 100대 명산이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급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두타산은 상급이다. 강원도 삼척과 동해에 걸쳐있는 그 두타산을 2019년 8월 16일 다녀왔다. 일행은 고교 동창인 남수 득한 선근 영민 재복 정형 종서 창민 8명이다.

 

▲두타산 주요 산행 코스는 5곳

두타산(1353m)은 등산 초보자들이 쉽게 정상을 밟을 수 있는 산이 아니다. 박달령을 경계로 두타산과 인접한 청옥산(1403m) 역시 마찬가지다. 쌍봉처럼 솟구친 두 봉은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한 토산 능선의 전형을 보여준다. 암벽과 암릉이 많아 조망이 뛰어나다. 계곡 또한 깊어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계곡 중 최고는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북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합류하는 무릉계곡이다. 고려시대 문신 이승휴는 파직당한 후 이곳에 은거할 때 ‘두타산 거사’라고 자칭하며 무릉계곡을 중국의 무릉도원 같은 선경이라 극찬한 바 있다. 두타산(頭陀山)은 탐욕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나 승려를 뜻하는 불교의 두타행(頭陀行)에서 나온 말이다. 청옥산(靑玉山)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7가지 보석 중 하나를 뜻한다.

두타산 주변 지도

 

두타산 산행 코스는 다양하다. 그중 등산객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는 크게 5가지다. ①동해시 무릉계곡~두타산성~두타산~박달령~박달골~쌍폭~무릉계곡 ②무릉계곡~쌍폭~박달골~박달령~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 ③무릉계곡~두타산성~두타산~댓재(삼척시 미로면) ④댓재~두타산~두타산성~무릉계곡 ⑤천은사(삼척시 미로면)~쉰움산~두타산~두타산성(혹은 박달령)~무릉계곡 코스다. 이중 댓재 들머리 코스가 무릉계곡 들머리 코스보다는 시간이 덜 걸리고 체력소모도 적다. 댓재 해발이 810m이고 무릉계곡 관리사무소가 해발 180m이니 두타산 정상(1353m)에 오르려면 무릉계곡에서는 고도를 1170m나 높여야 하지만 댓재에서는 고도를 540m만 높이면 되기 때문이다.

 

▲댓재 코스로 오르다

우리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댓재를 들머리로 삼았다. 댓재에 차를 주차하고 올라가 두타산 정상을 거쳐 무릉계곡으로 하산하면 우리보다 늦게 경기도에서 출발하는 친구(석범)가 무릉계곡에서 친구를 픽업해 댓재로 데려간다. 그후에는 그 친구가 댓재에서 차를 몰고 내려와 무릉계곡에서 나머지 친구를 태우고 두타산을 떠나는 것이다.

댓재, 두타산, 쉰움산 일대 지형도

 

우리가 오전 6시에 서울을 떠나 댓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조금 전이었다. 두타산은 창민이를 빼고 모두가 처음이었다. 사실 난 30여 년 전 두타산에 간 적이 있는데 무릉계곡의 쌍폭과 용추폭포만 어렴풋 기억날 뿐 정상까지 올라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댓재는 조릿대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한자로는 죽령(竹嶺) 또는 죽현(竹峴)이다. 댓재에 도착하니 ‘白頭大幹(백두대간) 댓재’라고 씌어진 대형 표지석이 우뚝 서있다. 바위 하단에는 ‘덕항산~댓재~두타산’이라고 쓰여있다. 이로 미루어 댓재는 백두대간의 한 구간이고 삼척시의 덕항산에서 내려와 댓재를 거쳐 두타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두대간은 이후 두타산~박달령~청옥산~고적대~백복령 등으로 이어진다.

‘白頭大幹 댓재’ 표지석 옆에서 찰칵

 

댓재 기점 두 출발지 중 잔디공원이 산신각보다는 완만하고 순해

댓재 기점 출발지는 인접해 있는 산신각이나 잔디공원이다. 산신각 길은 0.8㎞를 급경사로 올라가 다시 그 거리만큼 급경사로 내려와야 하지만 잔디공원 길은 완만하다. 두 길은 명주목이로 통하는 삼거리에서 합류해 두타산으로 뻗어있다. 우리는 잔디공원 길이 순하다는 사실을 알지못해 산신각 길로 올라갔다. 댓재 산신각에서 0.8㎞ 정도 올라가니 멋쟁이 소나무가 즐비한 햇댓등이 나온다. 그곳에 설치된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가니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하도 많이 내려가 길을 잘못들었나 의심이 들 정도지만 맞는 길이다. 산신각 길을 선택해 0.8㎞의 급경사를 만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댓재 출발 두타산 등산을 생각하는 독자라면 출발지점을 잘 살펴볼 것을 권한다.

어쨌거나 햇댓등에서 급경사 내리막으로 하산하니 잔디공원에서 완만하게 올라온 길과 만나 명주목이로 연결된다. 이후 길은 완경사와 급경사가 반복되면서 길게 이어진다. 명이목이를 지나면 작은통골재가 나타나고 조금 더 땀을 흘리고 올라가면 1228m 고지를 지나 통골목이(통골재)를 거치게 된다. 통골목이를 지나니 묘지가 보인다. 영민이가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 높은 곳에 산소를 썼을꼬” 궁금해 한다.

두타산 오르는 길. 이렇게 흙산이고 숲이 우거지다.

 

시야가 확 트인 마땅한 조망터가 적다는 게 아쉬울 뿐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산행길

전체적으로 완경사와 급경사가 반복되긴 하지만 숲이 우거지고 흙길이어서 걷는 데는 무리가 없다. 떡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군락지가 계속 이어진다. 소나무는 한결같이 아름드리다. 동해 바닷가쪽으로는 해가 쨍쨍한데 서쪽 태백산맥으로는 잔뜩 먹구름이다. 잠시 태백산맥 쪽에서 천둥이 치고 한두 방울 비가 내려 살짝 긴장했으나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아 안도했다. 비구름 일색이던 태백산맥 하늘도 점차 구름반 태양반으로 바뀌어 우려를 말끔하게 씻겨주었다. 댓재 초입에서 창민이가 비가 올 때 치는 무거운 천막(일명 츄라이)을 배낭에 챙겨넣는 것을 본 영민이가 “비가 올거 같지 않은데 왜 챙기냐”고 물으니 “등산은 1%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라며 창민이가 폼나게 응수한다. 영민이가 “역시! 창민”이라며 감탄했던 조금전 상황이 떠오른다.

댓재 코스는 숲이 우거지다보니 능선인데도 시야가 확 트인 조망터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의 정상들이 줄지어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도 두타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그런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탁 트인 조망터가 두세 곳에 불과했다. 동해 바다 쪽에 붙어있는 도시명을 알지 못해 나중에 석범에게 물어보니 동해시 북평이란다. 석범은 수년 전 삼척에서 해군 원사로 근무한 바 있어 이곳 지리에 익숙하다. 나는 대열의 가장 뒤에서 경치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올라가는데 앞서 올라가는 친구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낄낄댄다. 고교 친구라 직업도 학력도 재산도 상관없이 그저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장난하는 게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다.

능선에서 바라본 동해시 북평 모습

 

▲두타산 정상에서

힘이 들어 땅만 바라보며 가다 쉬다 오르는데 갑자기 넓직한 장소가 “짠” 하고 나타난다. 두타산 정상(1353m)이다. 댓재에서부터 6.1㎞를 걸어 정상을 밟았을 때 시계는 1시 33분을 가리켰다. 댓재에서 10시 10분 출발했으니 3시간 20분 정도 걸린 셈이다. 등산 지도에 등정 시간이 3시간으로 나오니 크게 늦지는 않았다.

두타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모두 얼굴에 뿌듯함이 배어있다.

 

어떤 산이든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느껴지는 쾌감과 뿌듯함이 두타산에서도 어김없이 밀려온다. 피곤함도 한 순간에 사라진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이 맛에 등산을 하는 것이리라. 금요일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상 올라갈 때까지 남녀 한 쌍, 정상에서 본 세 쌍이 전부다. 하산길에는 무릉계곡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정상은 넓고 평탄했다. 그런데 이곳에도 묘지 한 기가 정상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지금도 유족들이 찾아오는 듯 말끔했다. 올라올 때 통골목이 부근에서 보았던 묘지도 떠올라 강원도 삼척 지역의 매장 문화가 새삼 궁금했다. 운악산 정상에 경기 가평군과 포천시가 설치한 정상석이 두 개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삼척시와 동해시가 각기 따로 설치한 정상석이 두 개다.

두타산 정상석. 왼쪽은 삼척시가 오른쪽은 동해시가 설치한 것이다.

 

종서가 “태어나 가장 높은 곳까지 걸어올라왔다”고 자랑이다. 사실 종서의 요즘 산행 속도는 일취월장 그 자체다. 등산을 즐겨하지 않다가 올 봄부터 일주일산(一週一山) 원칙을 세워 산에 오르니 자신도 모르게 어떤 산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며 으쓱해 한다. 그러고보니 골프를 즐겨하던 주변 친구들도 중년이 되면서 점점 산을 찾고 있다.

두타산 정상은 산에 오를 때의 능선과 달리 사방이 탁 트인 조망 명소다. 강원 내륙의 명봉 명산은 물론 동해의 푸른 바다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완만하게 휘어있는 두타~청옥 능선, 그 동쪽으로 깊이 파인 무릉계곡, 그 계곡 양옆으로 치솟은 암릉과 기암괴봉, 남쪽 함백산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 줄기, 가리왕산 등 강원 내륙의 고산준령, 동해 먼 바다가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다. 두타산 정상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하산 준비를 하는데 남수가 먹다 남은 라면 국물까지 빈 막걸리통에 담아 배낭에 넣는다. 남수는 산에만 올라가면 ‘호통 남수’로 돌변한다. 자연 보호를 소홀히 하는 친구들을 항해 터뜨리는 호통이다.

두타산 정상. 오른쪽에 묘지가 보인다.
▲무릉계곡으로 하산

이제 하산이다. 시간은 2시 45분이다. 분비나무 군락지를 지나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1시간 정도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쉰움산(683m)으로 연결되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쉰움산 정상까지는 1시간 20분이면 닿는다. 갈림길에서 무릉계곡 쪽으로 1시간 정도 급경사길을 내려가니 오후 5시 쯤 계곡이 우리를 반긴다. 그날 새벽까지 태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린 터라 계곡물에 힘이 넘치고 물소리가 요란하다. 마침 등산객도 없고 몸은 땀으로 젖어있고 하산 후 처음 만나는 계곡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알탕’에 몸을 내던진 것이다. 알탕은 사전에는 없는 단어지만 팬티만 입고 계곡에 전신을 담가 땀을 식히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유난히 알탕을 많이 즐긴 것 같다. 강원 포천의 명성산, 경기 남양주 천마산, 강원 인제 아침가리계곡 등지에서 참으로 시원한 알탕을 만끽했다. 요즘 여름 산행 때는 산에서 계곡을 만나면 어김없이 알탕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무작정 알탕을 즐길 수는 없어 등산객이 다니지 않는 곳을 찾아 기어코 알탕을 하고 만다. 여름은 역시 알탕이다. 온통 땀에 젖은 몸을 계곡 물에 담그니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하산하는 모습. 오른쪽은 우리가 알탕한 계곡이다.

 

많은 비가 내린 후여서 산성12폭포와 관음폭포가 장관

알탕을 하고 수백미터를 내려가니 거북바위 왼쪽으로 산성12폭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내려야 볼 수 있다는데 그날 새벽까지 내린 많은 비 덕분에 물줄기가 굵고 길게 뻗어 장관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거북바위에서 무릉계곡 상류 건너편을 바라보니 박달령, 청옥산, 고적대로 이어지는 능선이 길게 펼쳐진다. 마치 경북 주왕산 전망대에서 계곡 건너편의 연화봉, 병풍바위 등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거북바위에서 올려다본 산성12폭포

 

거북바위에서 조금 더 내려가 돌 무더기 사이를 지나는데 두타산성이란다. 102년(신라 파사왕 23년)에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며 1414년(조선 태종 14년) 부임한 삼척부사가 산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까지 쳐들어왔다가 크게 패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두타산성에서 바라보는 조망 역시 일품이다. 정면 오른쪽을 바라보면 산 중턱에 관음암이 보이고 그 아래에 길고 하얀 물줄기의 관음폭포가 인상적이다. 관음암 일원에는 기암절벽이 우뚝하다.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하산길이 길고 급경사여서 평소 산을 잘 타는 남수조차 “설악산 오색을 내려오는 것처럼 힘들다”고 한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남수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하산길이 지겹고 지루했나 보다. 생각해보니 무릉계곡을 들머리로 삼으면 정말 힘들 것 같다. 두타산성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대궐터가 나오고 더 내려가니 무릉계곡으로 이어지는 산성 갈림길이 나온다. 두타산 일대 주요 장소까지의 거리를 구체적으로 표시한 안내판이 깔끔하게 세워져 있다.

 

무릉계곡 물소리 들으니 ‘열하일기’ 떠올라

무릉계곡을 끼고 걷는 길은 폭이 넓고 거목들이 도열해 있는 흙길이어서 산책길로는 최고다. 무릉계곡은 마치 대협곡처럼 수량이 엄청나게 불어나 소리가 우렁차고 급물살이다. 조선 말기 사람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떠올랐다.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 나와 돌에 부딪혀, 싸우는 듯 뒤틀린다. 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구슬픈 듯 굼실거리는 물 갈래와 굽이쳐 돌며 뒤말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노상 장성(長城)을 뒤흔들어 쳐부술 기세가 있다. 전차(戰車) 만승(萬乘)과 전기(戰騎) 만대(萬隊), 전포(戰砲) 만가(萬架)와 전고(戰鼓) 만좌(萬座)로써도 그 퉁탕거리며 무너져 쓰러지는 소리를 충분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초입의 무릉계곡

 

무릉계곡 입구에 도착하니 6시 46분이다. 총 거리 14.5㎞ 정도를 오르고 내리는데 8시간 36분이 걸린 셈이다. 쉬고 먹고 사진찍고 알탕 하는 시간 포함이다. 8명 중 힘들다며 대열에서 처진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로써 타고난 체력의 창민이를 빼고 나머지 친구의 체력이 엇비슷하다는 게 이번 등산에서 확인되었다. 다들 말로는 힘들다지만 몸은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요즘 전국 어느 산에 가도 빨강 노랑 등 원색으로 만든, “~하지 마세요” 류의 현수막이 두타산에는 비교적 적다는 것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영민이 그린 지도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