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후반, 전쟁의 먹구름이 유럽 상공을 뒤덮고 있을 때 미 육군항공대는 B-17 플라잉 포트리스의 성능을 능가하는 대형 폭격기를 구상했다. B-17은 B-17A 모델을 시작으로 B, C, D, E, F, G로 진화하면서 2차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인 미군의 주력 폭격기였다.
1940년 2월 미 육군항공대가 새 폭격기의 사양을 제시하자 보잉, 더글라스, 록히드, 콘솔리데이티드 4개사가 제안서를 냈고 이 가운데 보잉사가 생산자로 결정됐다. 개발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돼 1942년 9월 21일 B-29의 시험모델인 XB-29 슈퍼 포트리스(Super Fortress)가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데 성공했다. 이후 14대의 추가 테스트를 거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미 육군항공대는 12개월 이내, 1500대 납품을 보잉사에 주문했다. 길이 30.2m, 너비 43.1m에 최대 항속거리는 9650㎞였고 최대시속은 576㎞였다. 당시로서는 최신·최대 크기의 폭격기였다.
B-29가 처음 전투에 투입된 것은 1944년 6월 5일로 태국 상공이었다. 태평양전쟁에만 투입된 B-29는 1944년 11월 24일 첫 도쿄 공습을 시작으로 일본의 주요도시를 불바다로 만들며 일본 상공을 유유히 날았다. 당시는 대공미사일도 없고 지상에서 기관포나 기관총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고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면 속수무책이었다. 여기에다 미국의 물량공세까지 더해지면서 일본으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편대를 지어 늘씬한 비행기가 하얀 4줄기의 꼬리구름을 길게 휘날리며 높은 하늘을 덮다시피 날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폭격당하는 것도 잊은 채 하늘을 쳐다보며 구경할 정도였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에놀라 가이(Enola Gay)와 복스카(Bockscar)는 태평양전쟁을 마무리짓게 한 1등 공신으로 가장 유명한 B-29가 됐다. 6·25 때 2만 번이나 출격해 2만t의 폭탄을 떨어뜨려 북한을 초토화시킨 것도 B-29였다. 1960년 퇴역할 때까지 3970대가 생산돼 실전에 투입됐으나 4기의 프로펠러 엔진을 장착했기 때문에 새로이 등장한 제트엔진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제트엔진을 장착한 맘모스 B-36이 등장할 때까지는 사실상 ‘하늘의 왕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