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제1회 칸영화제 개막

세계최초의 국제영화제 베니스 영화제가 무솔리니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 전락하자 프랑스가 새로운 영화제 창설을 모색했다. 1939년 9월 1일이 예정된 영화제 개최일이었으나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돌면서 연기가 불가피했다. 다시 평화가 찾아온 1946년 9월 20일, 제1회 칸영화제가 프랑스 남부의 관광도시 칸에서 열렸다. 축제형식으로 치러져 프랑스는 물론 미국·소련·체코·인도·멕시코 등 대륙별 11개국 영화가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나, 영화인들은 심사위원 대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르네 클레망 프랑스 감독의 ‘철로의 투쟁’을 사실상의 그랑프리로 꼽았다. 나치 점령하에서 철도 노동자가 전개한 레지스탕스 활동을 다큐멘터리식으로 그린 영화였다.

칸영화제가 오늘날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로 자리잡기까지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1948년과 1950년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영화제가 무산되고, 1968년은 막상 개최는 했지만 5월혁명의 영향으로 젊은 영화감독들이 칸영화제를 부르주아 영화제라고 규탄하며 데모대가 대회장을 점령하는 바람에 중단됐다. 1979년에는 심사위원장이었던 작가 프랑소와즈 사강의 폭로발언이 영화제를 긴장시켰다. “그랑프리 선정에 뒷거래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심사결과는 ‘양철북’과 ‘지옥의 묵시록’이 8대2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발표 때 5대5로 둔갑,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11편의 우수작품’ 중 하나로 선정된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1984년)를 시작으로 1999년 송일곤 감독의 단편영화 ‘소풍’이 심사위원상을 받고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고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열연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영화제 대상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