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가짜 이강석 구속

“나 이강석인데…” 1957년 8월 30일 밤8시쯤, 한 청년이 자신이 이강석이라며 대뜸 경주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였던 이강석의 갑작스런 출현에 화들짝 놀란 서장은 청년이 있다는 다방으로 급히 달려갔다.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라며 황송해 하는 서장의 인사에 청년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태풍 에그네스가 영호남 일대를 강타, 경북 동해 연안 일대가 그야말로 쑥대밭을 이룰 때였다.

자유당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고 있을 때, 이강석은 백주에 파출소 기물을 부수는 등 거리의 무법자였고, 또 하나의 작은 권력이었다. 때문에 청년은 ‘꿈같은 3일’을 보낼 수 있었다. 경주는 물론 영천·안동·봉화 등지를 돌며 경찰서장과 군수로부터 칙사 대접을 받았고 수재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46만 환이나 되는 거액도 챙겼다.

9월 1일 밤, 경북 도지사가 자신을 의심하고 또 도지사의 아들이 이강석과 고교 동기동창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청년은 도지사 관저에 여장을 풀었다. 결국 이강석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가짜 이강석·강성병’22)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용돈이 궁해서 꾸민 연극인데 그렇게 굽실거리고 쩔쩔맬 줄 몰랐다”고 둘러댔지만 9월 18일 구속돼 징역 10개월을 살아야 했다. 진짜 이강석이 자살한 3년 뒤, 가짜도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죽음까지도 진짜를 따라하는 기이한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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