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 사망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가 1977년 9월 16일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54세로 쓸쓸하게 숨졌다. 후두 부분에 생긴 피부근염이 원인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를 먼저 떠올렸다. 오나시스가 9년 간에 걸친 칼라스와의 사랑을 접고 고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1968년)한 뒤로부터 칼라스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한때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증오했던 오나시스가 1975년에 막상 먼저 죽자 이때부터 칼라스가 은둔과 실의의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칼라스는 가난한 그리스계 이민자의 딸로 미국에서 태어났다. 칼라스가 세계적인 프리마 돈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47년, 당시 이탈리아 라 스칼라의 제왕이었던 툴리오 세라핀의 눈에 들면서였다. 오페라광이며 부호였던 30년 연상의 남편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미성도 아니고 어딘지 쉰 듯한 목소리의 그가 ‘세기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기까지에는 뛰어난 가창력과 현실감있는 연기력도 크게 작용했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집념과 노력이 뒷받침됐다.

칼라스는 무대를 위해서라면 100㎏의 몸무게를 30㎏ 이상 줄일 수 있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고 준비가 미흡하면 욕을 먹으면서까지 준비된 무대를 포기했던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천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배우이자 가수였다. 소프라노에게 바치는 최상급 찬사 ‘디바(여신)’ 소리를 들은 것도 칼라스가 처음이었다. 유명한 연출가 제피렐리는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원전(BC)이었다는 말로 칼라스의 위대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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