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독일 미술공예학교 ‘바우하우스’ 개교

벽면을 따라 위아래로 찬장을 배열한 현대식 부엌 공간, 둥근 갓을 쓴 전기 스탠드, 등받이와 팔걸이를 갖춘 철제 의자, 둥그런 손잡이를 단 주전자…. 지금까지도 우리의 생활공간에 깊숙히 침투해 있는 바우하우스 정신의 산물들이다.

1919년 4월 25일, 20세기 건축·디자인·회화 등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 미술공예학교 ‘바우하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시(市)에서 문을 열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이념을 체계화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주된 관심은 건축, 이른바 ‘바우(bau)’를 중심으로 모든 창조예술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제각기 고립돼 왔던 건축·회화·가구·조각 등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야 했고, ‘천재의 감각’에 의존해왔던 예술과 오랜 숙련을 필요로 하는 장인의 기술도 통합해야 했다. 학생들은 작업장에서 6개월간 장인들에게 목공·금속공·도예·벽화 등을 먼저 익혔다. 중세 길드의 도제식 교육방식이 채택됐고, 교수와 학생간의 일방적인 위계도 무너졌다. 칸딘스키·클레·파이닝거·야블렌스키 등 당대의 쟁쟁한 젊은 화가·건축가들도 교수진에 참여, 그로피우스의 교육이념을 뒷받침했다.

파격과 참신성으로 각지에서 찬사가 쏟아졌지만 전통을 옹호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은 늘 있게 마련이다. 바이마르 시민들도 바우하우스의 작품을 이해못한 데다 자유분방한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거슬렸다. 결국 1925년 데나우시(市)로 학교를 옮겼으나 그곳도 나치에 의해 폐쇄(1932년)되는 바람에 1933년 베를린에서 문을 닫았다. 학교 폐쇄는 이곳의 교수와 학생들을 세계 도처로 분산시켜 오히려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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