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후 산업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미국에는 새로운 기업이 넘쳐났고 기업가들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한 기업에는 독점의 문이 열렸고 기업가에는 부와 권력이 쥐어졌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였으며 동시에 독점의 시대였다. 록펠러의 독점기업들은 담합을 통해 멋대로 가격을 조작했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의회까지 매수해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업·정부의 유착관계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된 1900년에 절정을 이뤘다. 백악관은 거대 기업의 일개 지점에 불과했고 대통령은 거대 금융조직의 워싱턴지부 책임자나 다름없었다.
그때 ‘개혁의 기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루스벨트의 등장은 정경유착의 기업가·정치인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루스벨트는 무정부주의자의 총격에 숨진 매킨리의 후임으로 1901년 9월 14일 제26대 대통령에 오르자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보수주의자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혁신주의 시대가 닥친 것이다. 루스벨트는 철도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해온 노던회사를 첫 제물로 삼아 거의 잊혀진 ‘셔먼 반트러스트법’을 부활시켰다. 독점기업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재임기간 7년 동안 43개의 독점기업을 제소한 루스벨트를 가리켜 기업가들은 ‘트러스트의 파괴자’라고 불렀다. 1904년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는 철도회사의 부당 행위와 국민건강에 해가 되는 식품·약품을 규제하는 법들을 잇따라 제정했고,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제소했다. 러일전쟁을 종결지은 포츠머스 조약(1905년 9월)을 중재해 미국인 최초로 노벨상(평화상)을 수상했다. 1908년 태프트를 후계자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시켰으나 태프트가 보수세력과 밀착하자 1912년 선거 때는 자신이 직접 출마해 태프트를 떨어뜨리는 복수전을 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