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 피노체트 쿠데타로 사망

1970년 11월 3일, 칠레 대통령으로 취임한 살바도르 아옌데가 약속했다. “빵과 포도주로 가득찬 풍요와 정의의 조국을 건설하겠다”고. 아옌데는 자유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세계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뒤돌아보면 험난했던 여정이었다. 세 차례의 낙선 끝에 다시 출마한 그 해 선거도 사회·공산당을 주축으로 하는 6개 정당의 연합체인 ‘인민연합’의 통일후보로 뽑히지 않았다면 당선과는 무관했을 상황이었다. 단일후보를 내지못한 우익의 분열도 그를 도왔다.

그러나 과반수에 미달하는 36.6% 만을 득표해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헌법 규정을 따라야 했다. 우익과 미국의 총력 반대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기독교민주당의 지지를 끌어내 10월 24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에 올랐다. 아옌데는 사회주의 노선에 따른 사회개혁을 진행시켰다.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농업협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대단위 농지를 접수했으며 소득 재분배를 위해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물가를 동결했다. 하층민이야 열렬한 지지를 보냈지만 자본가·지주들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외국 자본가들부터도 외면을 당했다. 미국 소유의 세계최대 구리광산을 몰수한 것은 그의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그렇지않아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미국이 CIA를 동원, 경제위기를 조장하고 군부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도 노선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고 노동자들은 급진개혁을 요구하며 공장점거를 일삼았다. 그럼에도 1973년 총선에서는 과반수 지지를 확인했다.

아옌데는 돌파구를 신임투표에서 찾으려했다. 그러나 투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던 1973년 9월 11일 새벽.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가 쿠데타를 감행, 대통령 관저를 쑥밭으로 만들면서 계획을 무산시켰다. 아옌데는 “칠레 만세! 노동자 만세!”를 외치며 관저에서 죽음을 맞았다. 세계 사회주의 운동에 새로운 길을 열 것으로 좌익 지식인들 사이에 기대를 모았던 사회주의도 그의 죽음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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