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까지, 세계 영화계에 아시아는 없었고 문도 굳게 닫혀있었다. 그 문을 열어젖힌 이가 ‘일본 영화의 천황’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다. 일본에서 그는 또 한 명의 영화감독이 아니라 영화의 신(神)이고 전설이었다. 1951년 9월 10일, 제1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영화 ‘라쇼몽(羅生門)’이 황금사자상(대상)을 수상하자 세계 영화계는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후 숨죽여왔던 일본 영화는 이 때를 기점으로 1950년대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1982년 ‘라쇼몽’이 베니스영화제 역대 대상 가운데 최고작품으로 선정되고 구로사와가 ‘세계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10대 감독’에 당당히 오름으로써 그의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니었음을 세상에 증명해보였다.
일본적 소재를 즐겨 다루지만 스타일과 기법은 서구적 방식을 중요시하는 그의 영화들은 프랜시스 코폴라,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세계적인 거장들에 영향을 미쳐 그들은 구로사와를 기꺼이 스승으로 모신다. ‘라쇼몽’과 함께 세계최고의 전쟁 서사시라는 격찬을 받으며 1954년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했던 ‘7인의 사무라이’는 흔히 ‘시민 케인’ ‘모던 타임즈’와 나란히 영화사상 걸장 10편에 꼽히곤 한다. ‘20세기 일본 영화계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 속에서 30여 편의 대작을 만들며 한 시대를 풍미한 구로사와였지만 세월 앞에서만은 어쩔 수 없었다. 1998년 9월 6일,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우리의 스승이 눈을 감았다”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