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영국 청교도 태운 ‘메이플라워호’ 신대륙 향해 영국 출발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를 계기로 소위 ‘수장령’이라는 것을 발표해 로마 교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만든 ‘국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청교도’와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1603년 재위에 오른 제임스 왕이 왕권신수설을 내세워 국교를 강제로 믿게 하자 청교도의 급진파 분리주의자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09년 네덜란드의 라이덴으로 피신했다. 10여 년을 살았으나 살림살이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들의 정체성도 잃을 것을 우려한 이들은 신대륙행을 결정했다.

신대륙 버지니아에는 1607년 영국인들이 세운 제임스타운이 있었다. 그러나 분리주의자들에게는 돈도 강력한 후원자도 없었다. 이때 버지니아에 개척자들을 송출했던 런던의 버지니아회사가 손을 내밀었다. 1620년 9월 6일, 120t급의 ‘메이플라워호’가 영국 플리머스항을 떠났다. 배에는 훗날 ‘순례시조(Pilgrim Fathers)’라 불린 35명의 청교도와 일반인을 합한 102명이 타고 있었다. 11월 21일, 배가 뉴잉글랜드 부근의 케이프 콪(Cape Cod)에 닻을 내렸으나 버지니아보다 한참 북쪽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른 곳을 물색했다. 적당한 곳이 없자 그곳에 정착하기로 하고 출항지에서 이름을 따 플리머스로 지었다.

배에서 내리기 전 성인남자 41명은 시민적 정치공동체를 자치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것이 원시적이긴 했지만 미국 최초의 자치헌법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그러나 신대륙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낙원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이었다. 북쪽에서 사나운 추위가 몰아쳤고 먹을 것도 부족했다. 결국 그해 겨울 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 봄이 되자 인디언 원주민들이 이들에게 옥수수 씨앗을 주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추수가 끝나고 순례시조들은 인디언들을 초대해 사흘간 잔치를 벌였다. 미국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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