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군비 확장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1938년 3월)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체코의 일부 지역을 점령(1938년 9월)할 때는 전쟁 회피를 위해 오히려 거들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39년 봄부터 여름까지 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유고 등과는 친선서약을 맺어 혹시모를 배후의 위험에 대비했다. 무엇보다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8월 23일)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때 독·소 양국은 폴란드를 양분한다는 비밀의정서까지 체결해 1개월 후에는 폴란드를 반토막내며 서로의 이익을 챙겼다.
1939년 9월 1일, 마침내 히틀러의 야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격전(電擊戰·blitzkrieg)’으로 폴란드를 침공한 것이다. 히틀러는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뮌헨회담 때 보여준 유화적인 모습에 비추어 영국과 프랑스도 쉽게 전쟁에 뛰어들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유럽은 21년만에 다시 죽음과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몰렸다.
개천 초기 영국은 독일 북부의 군항을 폭격하고 프랑스는 독일 서부 국경의 요새를 공격했지만 더 이상의 적극적인 참전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전투다운 전투 없이 소강 상태가 계속되자 한때는 ‘가짜 전쟁’이라고까지 불렸다. 하지만 수년 내 1700만 명이 전사하고 2500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20세기판 살육대전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