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독립운동가 서일 자결

서일 선생은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그는 일제 암흑기 10여년간 만주벌판에서 무장 독립운동단체를 진두지휘했던 독립운동가였다. 대종교에 귀의한 종교인이었으며 만주의 조선인들을 가르쳤던 교육자였다. 서일은 1911년, 조국이 망국의 경술국치를 겪자 두만강을 건너 동만주 왕청현에 정착한 후 오로지 일제를 물리칠 ‘힘’을 기르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정신력과 군사력을 힘의 원천으로 믿어온 그는 대종교를 통해서는 강한 정신력을 가르치고, 중광단 → 대한정의단 → 대한군정부 → 북로군정서로 확대·발전한 항일무장단체에서는 군사력을 키웠다.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북로군정서도 그가 조직한 독립군부대였다. 청산리전투 후 북로군정서도 다른 독립군 부대와 함께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을 피해 러시아령으로 이동했다. 서일은 이곳에서 홍범도의 대한독립단과 세를 합친 대한독립군단의 총재로 추대될 만큼 위치가 독보적이었다.

1921년 1월, 대한독립군단이 우수리강을 건너 좀더 안전한 러시아령 자유시(自由市·알렉세예프스크)로 이동하고 다른 독립군 부대도 이곳으로 집결하자 일본은 이들의 무장을 해제하도록 러시아를 위협했다.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혁명 후 쇠약해진 국력으로 일본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던 러시아가 장갑차와 30여 문의 기관총을 앞세워 독립군 부대를 공격한 이른바 ‘흑하사변’으로 272명이 죽고 250명이 실종되고 917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큰 타격을 입자 서일은 통분을 참지 못하고 8월 27일 대종교의 폐기법으로 자결 순국했다. 4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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