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필리핀 정치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1983년 8월 21일 오후1시, 4∼5발의 총성이 필리핀 마닐라공항에 울려퍼졌다. 중화항공 여객기가 막 착륙한 뒤였다. 잠시 후 한 여인이 “군인들이 니노이를 쏘았다”고 울부짖었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가 피살된 것이다. 곧이어 항공기 정비사 모습을 하고 있는 20대 청년도 군인들이 쏜 수 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 쓰러졌다. 살려둬서는 안되겠다는 듯 청년의 몸에는 몇 차례 더 총격이 가해졌다.

필리핀 정부는 죽은 청년이 청부살인업자 출신의 범인이라고 발표했지만 야당 측이 발표한 목격자들의 증언은 달랐다. 아키노를 태운 여객기가 공항에 도착한 뒤 아키노를 호위하려고 비행기에 올라탄 보안요원들이 살해했다는 것이다. 전군에 비상령이 내려진 가운데 반정부 시위로 필리핀 전역이 혼란에 휩싸이자 마르코스 대통령은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위원들이 마르코스파 일색이었던 터라 오히려 국민들의 의혹만 불러일으켰다.

아키노가 필리핀 내 야당 세력을 규합하기위해 망명지 미국을 떠날 때부터 그의 죽음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미국 뉴욕의 필리핀 총영사관이 암살소문을 내세워 아키노에게 비자 발급을 해주지 않자 아키노는 위조여권을 만들어 귀국을 강행하다가 이날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키노의 비극은 그가 1973년의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그를 경계한 정적 마르코스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1972년)로 그를 투옥시킨 뒤 사형을 선고했다가 미국으로 쫓아냈었다. 그의 죽음은 결국 전국적인 반정부시위의 도화선이 돼 마르코스를 축출하는 ‘피플 파워’의 밑걸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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