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삼별초, 대몽항전 위해 전라도 진도 도착

고려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에 침입했다. 최우의 무신정권은 몽고가 수전(水戰)에 약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몽고가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침략과 철수를 반복하던 중 최씨 무인 정권이 무너졌다. 고려 고종은 1259년 개경 환도를 약속하고 태자 전을 원나라에 입조케 함으로써 고려와 원나라의 무력 충돌도 29년만에 막을 내렸다.

태자가 고려를 떠난 2개월 뒤 고종이 갑자기 죽어 태자가 원종으로 즉위했으나 실권은 여전히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무신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원종 뒤에는 원나라가 버티고 있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원종이 무신들마저 제거함으로써 무신정권은 1270년에 완전히 종식됐다. 따라서 개경 환도도 순조롭게 진행될 듯 싶었다.

이때 예상치 않은 복병이 등장했다. 삼별초였다. 최우의 사병(私兵)으로 출발했지만 당시는 최씨의 집권기였으므로 삼별초는 사실상 사병의 성격을 넘어선 강력한 전투부대나 다름없었다. 배중손 장군을 중심으로 군사를 일으켜 새 왕을 옹립한 삼별초가 1000여 척의 배에 몸을 싣고 강화도를 떠나 진도에 도착한 것은 1270년 8월 19일이었다. 삼별초는 진도에 대규모 용장산성을 쌓고 대몽항전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삼별초 항쟁은 무신정권의 잔여세력이 왕권을 강화하려는 원종에게 도전한 측면이 없진 않으나 백성들의 호응이 이들을 고무시켰다. 지방수령들도 앞다퉈 삼별초에 합류했다.

삼별초 정부는 몽고의 침략에 시달렸던 영·호남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제주도까지 점령, 한때는 전라도·경상도 주요 해안지방과 제주도까지 아우르는 사실상의 해상왕국을 이뤄냈다. 그러나 상대는 막강한 여·원(麗·元)연합군이었다. 결국 1273년 2월,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마지막 삼별초가 원의 홍다구와 고려의 김방경 등이 지휘하는 1만 여명의 연합군에 패함으로써 장장 3년에 걸친 대몽 항쟁도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