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8월 18일,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경축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 인민복 차림에 붉은 완장을 한 100만 명 학생들의 함성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단상에는 마오쩌둥이 자리하고 학생들의 표정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소조(小組)로만 활동해 오던 홍위병들의 첫 대규모 세 과시였고 중국 전역을 광란과 파국으로 몰고간 문화대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3개월 전 칭화대 부속중에서 발원한 홍위병은 이후 중국 현대사를 파괴한 상징어였고 구타와 살인을 일삼아도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면죄부였다. 마오쩌둥의 호응과 묵인으로 기세등등해진 홍위병들은 자의적으로 해석한 ‘네가지 낡은 것(사구·四舊)’ 즉 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을 파괴하는 데만 열심이었을 뿐, 속절없이 사회가 무너져 내리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파괴는 지방으로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부녀자들은 단발머리를 해야 했고 치마를 입으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외국과 관련 있는 것은 무조건 공격 대상이었다.
인민일보가 1면에 큼지막하게 ‘실로 훌륭한 일’이라며 옹호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유서깊은 문화재들이 파괴됐고 그 자리에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대체됐다. 불상들도 철거됐고, 공자의 초상도 파괴됐다. 반혁명분자로 몰린 사람들은 삭발을 당하거나 머리에 먹물 글씨가 씌어졌고 심지어는 인두로도 몸이 지져졌다. 광기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