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록 음악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갓 21세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1956년은 최고의 해였다. 2년 전 데뷔해 미국 대중음악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엘비스는 1956년 1월 앨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매하면서 독주 채비를 갖춰갔다. “록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이 곡은 4월부터 8주 연속 인기차트 1위에 올라 ‘하운드 독’ ‘러브 미 텐더’의 인기까지 견인하며 1956년을 명실상부한 ‘엘비스의 해’로 만들었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내트라 등의 감미로운 음악이 오랫동안 지배하던 음악계에 끈적하면서도 격렬한 샤우트 창법을 구사하는 엘비스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전문가들은 혹평했지만 젊은이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매력적인 목소리에 외설스럽긴 하지만 무대 매너와 외모까지 갖춘 엘비스는 흑인음악 ‘리듬 & 블루스’와 백인음악 ‘컨트리 & 웨스턴’의 결합으로 태어난 록을 미국과 세계에 알린 전령사였다. 흑·백이 비슷하게 공존하는 멤피스에서 자라 백인이면서도 흑인의 감성과 음감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던 것도 엘비스에게는 행운이었다.

영화 출연에 이어 엘비스가 안방극장까지 사로잡은 것은 9월9일 미국 최고의 인기TV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면서였다. 82.6%라는 공전의 시청율을 기록한 이 쇼에서 엘비스가 열광적으로 몸을 흔들어대며 열창하자 5400만 명의 시청자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쇼 출연 이후 그의 인기는 급상승했지만 일부 여성단체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킬 위험한 존재”라며 그를 내쫓으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럼에도 비틀스의 존 레넌은 “그 이전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잘라 말하고, 폴 매카트니는 “구세주가 나타났다”고 격찬했다. 1977년 8월 16일 강박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약물을 과다복용하다 42세로 숨졌다. 이때 멤피스의 한 일간지 1면 톱제목은 ‘왕은 죽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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