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윤보선, 국회에서 4대 대통령으로 선출돼

1960년 4·19의거 후 정권을 맡을 정치세력으로는 민주당이 유일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민·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의원 219개 선거구에서 무려 172석(78.5%)을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민주당 내 신·구파가 우열을 가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의석 분포를 이룬게 문제였다. 갈등이 내연하는 가운데 신·구파 모두 내각책임제에서 국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중모색에 들어갔다.

그즈음 민주당 지도층의 면면을 보면 신파는 장면이 중심이었고 구파는 조병옥 서거 후 마땅한 리더가 없었다. 윤보선과 김도연이 있었으나 장면의 맞수는 아니었다. 구파는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김도연을 국무총리로 밀어 두 자리를 독점한다는 전략을 세웠고 신파는 대통령 자리를 윤보선에게 넘겨주되 총리는 자파(自派)의 장면이 차지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윤보선의 대통령 당선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8월 12일 윤보선은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예상대로 208표(재석 259명)를 얻어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두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무리한 욕심이 화근이었다. 8월 13일 대통령에 취임한 윤보선은 구파의 계획대로 김도연을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8월 17일 김도연은 총리 인준 투표에서 정족수보다 3표 부족해 인준에 실패한다. 할수없이 윤보선은 장면을 지명해야했고 장면은 8월 19일, 총투표수 225석 중 可 117, 否 107, 기권 1로 총리에 인준됐다. 윤보선은 당연히 장면을 선택해야 했으나 무리한 욕심으로 김도연을 지명하는 바람에 신·구파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박정희의 5·16 군부쿠데타로 2공화국은 수립 9개월여 만에 종막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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