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신민당사 농성여공 강제진압 당해

1979년 8월 11일 새벽2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침입, 이틀째 철야농성중인 179명의 YH무역 여공들을 강제해산시켰다. 여공들이 “못간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으며 반항하고 일부 여공들은 유리창과 사이다 병을 깨뜨려 “자살하겠다”며 창가로 달려갔으나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억센 경찰들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여공들과 당직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며 ‘닭장차’에 쑤셔넣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하고 취재기자도 12명이나 폭행당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상임집행위원 김경숙이 당사 뒤편 지하실 입구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을 거뒀다. 경찰은 김경숙이 왼팔동맥을 끊고 12m 아래로 투신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인(死因)을 4번이나 바꿔서 발표하는 바람에 죽음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됐다.

이른바 ‘수출의 꽃’으로 불리던 여공들이 신민당사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폐쇄한 공장을 가동시켜 일자리를 달라는 것. YH무역은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수출순위 15위의 국내 최대 가발업체였으나 업주의 자금유용 등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 급기야는 1979년 4월과 6월에 폐업을 공고하고 사업장을 폐쇄한 부실기업이었다. 노조는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야당인 신민당을 찾았으나 유신체제가 막바지로 치닫던 때 신민당 역시 힘이 없었다. 결국 사건은 여야의 극한 대립을 불러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과 부산·마산 항쟁으로 발전돼 급기야는 박정희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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