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美 와츠 흑인폭동

인종차별을 금한 미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인 ‘신 공민법’(1964년 7월 2일)과 ‘흑인투표법’(1965년 8월 6일)이 공포됐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흑백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하루아침에 사라질리 없었다. 더구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이 수동적이고 비효과적이라고 생각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1965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 2명이 로스엔젤레스 흑인거주지 와츠 부근에서 음주운전을 한 21세 흑인 청년과 격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와츠는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에 인접한 흑인 밀집지역으로 빈곤, 인구 과잉, 높은 실업율, 범죄 만연으로 황폐한 지역이었다. 평소 그 지역 흑인들은 주로 백인들로 구성된 경찰을 점령군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날, 날씨는 섭씨 35도로 무더웠다. 흑인 구경꾼들이 몰려든 가운데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며 흑인을 교통위반혐의로 체포하려 하자 흑인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3000여 명의 경찰이 동원돼 진압에 나섰지만 이미 거리는 약탈, 방화, 투석 등으로 무법천지였다.

14일 계엄령에 준한 ‘폭동사태선언’이 발표되고 1만4000명의 주(州) 방위군이 동원되고서야 폭동은 17일에 겨우 진압됐지만 1주일 동안 34명(흑인 25명)이 죽고 103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체포된 사람도 4000명이나 되고 재산 피해도 2억 달러에 달했다. 1년 전부터 흑인 폭동이 전국 주요도시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발생한 1965년의 와츠 폭동은 이후 3년간 계속될 흑인 폭동의 시발점이었다.

1966년에는 뉴욕과 시카고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1967년 봄과 여름에는 35개 도시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으로 디트로이트와 뉴어크에서만 68명이 죽고 1400명이 부상당했으며 7000여 명이 체포됐다.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됐을 때는 미 전역 168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 46명이 사망하고 2600명이 부상했으며 2만 1000여 명이 체포됐다. 미 역사는 이 시대를 케네디 대통령, 킹 목사, 로버트 케네디 의원의 피살 등과 함께 묶어 ‘항의의 시대’ ‘폭력의 시대’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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