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조선일보·동아일보 강제폐간

1940년 1월 15일, 총독부 경무국장이 조선일보 방응모 사장과 동아일보 백관수 사장을 불러 일본의 기원절(건국기념일)인 2월 11일을 기해 스스로 폐간하고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통합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두 사장은 “폐간은 중역회의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일축했다. 이후 양사는 계속 신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총독부 방침은 폐간으로 기울어 있었다. 시기만이 문제였다.

두 신문이 공동보조를 취하며 말을 듣지 않자 총독부는 용지통제권을 발동해 신문용지 배급량을 줄이고 신문사 간부들을 연행하며 폐간을 종용했다. 결국 두 신문사는 일제의 폐간령에 따라 8월 10일 폐간해야 했고 조선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일문판 경성일보와 한글판 매일신보만이 남았다. 조선일보는 마지막호인 8월 11일자 신문(지령 6923호)을 8월 10일에 미리 제작하고 편집국 직원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가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동아일보 역시 8월11일자 6819호를 마지막으로 5년간의 긴 침묵에 들어갔다. 1920년 이후 20년만에 다시 우리 신문없는 언론 암흑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총독부 집계에 따르면 폐간 당시의 조선일보 발행부수는 6만3000부, 동아일보가 5만5000부였다. 폐간호에는 폐간의 아픔이 그대로 묻어났다. 조선일보 마지막 ‘팔면봉’은 20년 세월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음을 안타까워했고 한용운은 ‘신문이 폐간되다’라는 한 편의 시를 써 분노를 표현했다. 동아일보는 폐간사와 함께 엉겨있는 포도송이를 담은 고별사진을 실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 포도송이처럼 뭉칠 날이 있으리라는 메시지였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