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프리드리히 엥겔스 사망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드리워진 카를 마르크스의 그림자는 짙고 깊었다. 분명 엥겔스도 과학적 사회주의인 ‘마르크스주의’의 공동 창시자였고 마르크스의 사상적 동반자였지만 영예는 대부분 마르크스에게 돌아갔다. 예언자적 통찰력을 가진 천재 마르크스를 곁에 둔 엥겔스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구축한 엥겔스였지만 마르크스를 후원하고 홍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1844년 8월, 둘은 파리에서 진정한 의미의 첫 만남을 가졌다. 마르크스주의의 출발이었고, 인류사의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독일 이데올로기’(1845년)와 ‘공산당 선언’(1848년) 등을 공동 저술하며 사상적으로 공동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면서도 둘은 20년 동안 1300통의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개인사에도 우애가 깊었다. 돈이 궁하면 마르크스는 손을 벌렸고 엥겔스는 그때마다 채워주었다.

마르크스 사후(1883년), 엥겔스는 비로소 홀로 서는 기회를 맞았으나 마르크스의 미완성 초고를 토대로 자본론 2권·3권을 펴내며 ‘영원한 마르크스의 대변자’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1895년 8월 5일, 마르크스가 죽었던 망명지 런던에서 그 역시 눈을 감았다. “우리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 엥겔스가 만년에 했던 술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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