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백건우․윤정희 부부 피랍 중 탈출

1977년 7월초, 재불(在佛)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박인경을 통해 스위스 취리히의 한 부호가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한다는 제의를 받는다. 박인경은 당시는 생존했던 이응로 화백의 두번째 아내로, 이응로와 함께 프랑스에서 생활하다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인물이다. 며칠후 백건우는 부호가 보냈다는 초청장을 박씨로부터 건네받는다. 백건우는 한 해 전, 이응로의 주례로 영화배우 윤정희와 결혼식을 올린 바 있어 평소 이․박 부부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백건우는 윤정희와 5개월된 딸, 그리고 박씨와 함께 1977년 7월 29일 취리히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는 부호의 여비서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여자는 부호의 양친이 유고 자그레브에 있다며 연주지 변경을 요청했다. 백․윤 부부는 공산국가라 내심 찜찜했으나 할 수 없이 자그레브행 비행기를 탔다. 자그레브 공항에는 ‘조선민항’이라 쓴 북한 항공기가 착륙대기 중이었다. 백건우 가족과 박씨가 찾아간 곳은 한적한 시골에 있는 3층 집이었다. 그러나 있어야 할 부호는 없고 동양인 남자 만이 보이자 백건우는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동양인의 “웨이트, 웨이트” 소리를 뒤로한 채 타고 온 택시를 타고 유고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달렸다.

영사관 직원의 안내로 호텔에 투숙했으나 이튿날 아침 객실 문앞에는 북한사람으로 보이는 3명의 모습이 서성거렸다. 영사관 직원의 도움으로 자그레브 공항을 벗어나 파리 오를리 공항에 내린 것은 30일 정오쯤이었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백건우가 이 사실을 파리 주재 한국대사관에 알려 세상에 공개됐으나 박씨는 3차례에 걸친 대사관의 출두요구에 응하지 않아 이 사건은 아직도 미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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