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른 이소룡의 돌연사

1960년대 말까지 홍콩영화는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제작기술도 낮았지만 스타부재가 주요 원인이었다. 지미 윙(王羽)의 외팔이 검객 시리즈가 눈길을 끌 정도였다. 이때 한 사내가 혜성같이 나타나 홍콩 영화계를 평정하고 세계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이소룡(李小龍), 미국명 브루스 리였다.

홍콩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당산대형’이 1971년 개봉되자 사람들은 준수한 외모에 군살 하나없는 근육질의 몸매, 게다가 신기에 가까운 액션과 괴기스러운 신음소리에 전율을 느꼈다. 신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육체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홍콩에서 잠시 생활하긴 했으나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나왔으니 그는 사실상 황색 얼굴을 한 미국인이었다. 그렇지만 인종편견의 벽은 두터웠다. 평소 꿈꿔온 헐리우드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무술에는 자신이 있어 무술도장을 열고 무술 연마에 힘을 쏟았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TV극에 출연해 쌍절곤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을 한 영화제작자가 눈여겨 보면서였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1만 달러에 영화출연 제의를 수락하면서 그의 인생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당산대형’에 이어 ‘정무문’ ‘맥룡과광’ ‘용쟁호투’ 등 출연하는 영화마다 잇따라 성공하면서 그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른다. 홍콩 영화 역시 세계 영화계의 중요 변수로 자리잡아 나갔다. 그러나 신이 시샘한 탓일까. 1973년 7월 20일 밤, 홍콩의 한 여배우 아파트에서 돌연 쓰러지면서 정점을 향해 달리던 그의 영화인생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병원에 실려갔으나 이미 숨이 멈춰있었다. 33세였고, 공식 사인은 뇌종양이었다. 아직 촬영을 끝내지 못한 ‘사망유희’가 마지막 유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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